사노라면...
우리는 자신이 스쳐 지나간 곳에 무수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우연히 들른 화장실에서 '아니온 듯 다녀가세요'라는 글귀가 쓰인 안내문을 발견했다.
아니온 듯 다녀가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듯 쓰레기를 던지고 갔으면,
이런 안내문이 붙었을까?
사실 이런 안내문은 산을 오를 때도 필요할 것 같다.
사람들은 머물렀던 여기저기에 쓰레기를 남기고 떠난다.
"아니온 듯 다녀가시오!" 외치고 싶다.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낙서들도 남기고 간다.
공중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낙서가 넘친다.
화장실에만 낙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낙서는 곳곳에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성에 갔을 때였다.
거대한 술통이 전시된 그곳 천정에 한글 낙서가 보였다.
도저히 술이 닿지도 않는 그 높은 곳에 어떻게 낙서를 했을까? 수수께끼...
나는 한동안 그 낙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곳만은 아니었다.
유럽을 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난 한글 낙서와 맞닥뜨려야 했다.
왜 다들 자신이 다녀간 것을 낙서를 해서라도 알려야 했을까?
"아니온 듯 다녀가시오!" 외치고 싶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건 말건
내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얼까?
사실 쓰레기와 낙서 정도라면 그리 큰 해악도 아닐 지 모른다.
이 세상에는 그 이상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무수한 사람들에게, 광대한 자연에게
커다란 상처로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 앞에서 쓰레기와 낙서 정도의 흔적은 무색하다.
될수록이면 이 세상을 아니온 듯 다녀가고 싶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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