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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설 때면 노란옷

사노라면

by 산삐아노 2014. 9.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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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옷을 입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추위나 더위,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옷을 입기도 하지만

교통사고를 피하기 위해서 특정한 옷을 입어야 하는구나, 새삼 느끼는 요즘. 

 

 

 

프랑스 브르타뉴 관광객이나 스위스 관광객이 우리나라 관광을 다니다보면 교통사고를 당할 확륙이 엄청 높을 것 같다.

스위스나 브르타뉴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거의 동일하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면 저 멀리 달려오던 차도

(그차의 앞과 뒤에 한 대의 차도 없고, 건널 사람이 오직 나 뿐이고, 내가 찻길을 건너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더라도)

서서히 속력을 줄이면서 정확히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멈춰 세우고

내게 길을 건너라는 눈짓, 손짓을 한다.

 

심지어 브르타뉴에서는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앞에서, 게다가 보행자신호가 빨간 불일 때조차

차가 멈춰서서 건너가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해서 황당했던 적도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루에 적어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2회, 신호등 있는 횡단보호 4회를 건너다녀야 하는 나로서는

횡단보호 앞에서 겪는 일상적 경험이 스트레스, 짜증을 넘어 목숨을 위협당하는 공포심 마저 느낀다.

 

신호등 횡단보도에서 내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은 이렇다.

횡단보도 앞에 건너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차들은 당연히 횡당보도를 쌩쌩 달린다.

횡단보도 앞에서 건너겠다는 의지를 보여도 차들은 당연히 내 앞을 쌩쌩 달린다. 심지어 횡단보도에서는 더 속도를 낸다.

차가 제법 멀리 있어서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으면 어느새 속도를 올린 차들이 보행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달린다.

나는 어느새 횡단보도 정중앙에서 오고가며 달리는 차량들 사이에서 돌석상이 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다.

차들의 처분만 기다려야 할 뿐이다.

 

이처럼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당연히 차들 우선의 공간으로 운전자들을 생각한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의 경우도 보행자의 녹색불빛이 들어와도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차들을 흔하다.

때로는 지나가는 보행자에 바짝 다가와 급정거를 하는 차량도 있는데, 정말 위협적일 정도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느새 노란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노란 겉옷이나 노란 윗옷을 입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차량이 적어도 횡단보도에서 나를 돌석상으로 만드는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

노란옷을 입고 횡단보도를 건너겠다는 적극적 의사를 표시하면

차량은 대체로 내 의사를 존중해준다.

 

몇 차례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난 밖을 나설 때면 노란옷을 즐겨입게 되었다.

특히 비오는 날에는 검정바지에 노란웃옷을 입고 외출한다.

청소년기 미술시간에 명시도가 가장 높을 때가 검정과 노랑이 같이 있을 때라고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검정과 노란옷을 함께 입고 길을 건너면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적어도 노란옷만 입어도 긴장감은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내가 노란 옷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옷을 살 때도 노란옷을 고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노란옷을 덜 입게 되는 날이 언제일지...

속도가 빠르고 강한 것 위주의 일상이 우리 것이니까, 요원하긴 하지만,

정말로 시민의식이 좀더 고양된 사회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보행자를 무시하고 마구 자전거로 내달리는 아이들을 볼 때면,

저 아이들이 자라 자가용차를 운전할 때면 보행자, 자전거 따위를 무시하고 달리는 운전자가 되겠구나, 싶어 안타깝기만 하다.

 

뭐든 빠르고 강한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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