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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 재개발로 사라질 춘천 약사동 풍경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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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삐아노 2020. 4. 2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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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욱 감독의 다큐멘터리 [망대(2014)], 영화관에서 이 다큐의 예고편을 봤을 때 이 영화가 보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놓쳤다. 

제목 '망대'가 낯선 단어라서 더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망대'는 적이나 주변을 살피기 위해 높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다큐 속의 망대는 강원도 춘천의 약사동 언덕에 있던 망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언제 만들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 망대는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망대는 대략 7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망대. 

망대는 화재를 알리고, 교도소가 있었을 때는 죄수를 감시하는 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춘천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보니 실향민들, 소외된 사람들이 망대를 향해 이동해 오고 자연스레 집들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집 주변에는 꼬불꼬불 좁은 골목길이 형성되었다. 일명 '아리랑 골목'.

영화는 마치 판타지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030년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피신해버린 불법체류자를 찾아나선다며.  

망대 주변에 아무렇게나 계획없이 자연스레 형성된 초라하다면 초라한 동네.

그래서 재개발 대상지가 되었고 그 초라함을 없애기 위한 재개발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망대는 이제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더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판정받은 것이다.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의 말이 귀에서 뱅뱅 돈다. "쓸모 없는 것이 더 가치 있다."

쓸모없는 것이 가치를 갖는다는 말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예술도 쓸모없는 것이지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된다. 

실용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 점에서 망대는 춘천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점, 시간을 사색케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다. 

오랜 세월을 산 나무가 세월을 지켜보며 지냈듯이 망대도 생명체는 아니지만 주변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며 지냈던 존재가 아닌가.

누군가는 사라지는 것들이 아쉬워서 그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세상만사는 변화하고 소멸되기 마련이니 덧없음을 아쉬워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을 누군가 기억해준다면 기억하는 존재 속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 [망대]는 바로 기억하는 작업일 것이다. 

좁은 골목의 계단은 나이든 할머니가 오르기에는 무척 어려운 길임에 틀림없다. 

주변 집에 화재가 나면 화재진압을 하기도 힘든 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의 모습은 오래 전의 기억을 담고 있다. 21세기라고 하기에는 20세기 중반같은 느낌을 준다.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골목길을 만드는 집들은 내 어린시절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의 집들이 이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젖었다. 

시멘트 블럭 벽돌, 지금은 주변에서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예쁘지도 않고 초라한 집 벽을 이루던 그 벽돌. 

누구는 이런 초라한 동네보다는 멋진 신형 아파트가 들어서 깨끗하고 산뜻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초라한 것조차 사라진다고 하니 마음이 쓸쓸하다. 

'기대수퍼',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참 따뜻한 이름이다. 

동네사람들이 오고가면 이 수퍼에서 필요한 물건도 사고 잠시 앉아 쉬었다 가는 휴식공간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다들 나이가 많아보였다. 

어떤 할머니는 60년을 살아온 동네가 재개발 되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라진 동네와 함께 인생이 끝나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은 자신을 이 동네와 운명공동체로 간주하나 보다. 

60년이란 세월이 짧지 않으니까 그 세월을 온전히 한 동네에서 보냈다면 동네가 바로 자신같은 느낌이 들 것도 같다. 

초라하게 낡은 동네가 죽음을 맞듯 당신의 인생도 끝에 다다랐다는 생각, 슬프다. 

불현듯 어린 시절 놀러갔던 이모네 동네 골목과 집들이 떠올랐다. 

그곳도 지금은 재개발로 골목도 집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곳에서 살던 이모는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모도, 집도, 골목도 더는 없다.

다만 내 기억 속에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실 매 순간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사라진다. 변화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설사 망대가 살아남았다고 해도 망대는 계속해서 마모되고 변화해갈 것이다. 

아리랑 골목의 집들도 마찬가지다. 

 

망대도 아리랑 골목도, 그곳 집들도, 또 주민도 차례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다큐 [망대]는 필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기억을 붙잡아 줄 것이다. 

 

삶은 어쩌면 기억인 한에서 삶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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