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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섬과의 이별

사노라면

by 산삐아노 2020. 7. 2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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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아무리 아껴도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흰털이 나 있는 선인장이 백섬

며칠째 백섬에서 애벌레를 발견했다.

발견할 때마다 애벌레를 버렸지만 오늘 살펴보니 백섬 위 아래로 애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다니고 있었다.

백섬은 가시에도 윤기가 없어지고 나날이 말라갔다. 

백섬이 부분적으로 갈색으로 변하면서 썪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벌레들은 썩어가는 백섬을 해체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백섬을 먹고 자라고 있어 백섬이 썩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백섬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고, 백섬을 이용해 벌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백섬과 함께 한 세월이 4년이 넘었고 그동안 애지중지하면서 키웠지만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된 것으로.

백섬은 함께 모임을 하던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 모임은 작년 연말에 끝이 났고 이제 백섬과도 끝이 날 때가 온 것이다. 

 

백섬을 화분에서 빼내었다. 아직 죽음이 아주 임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면 백섬은 천천히 고사해갔을 것이다. 

백섬을 쓰레기장에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천가에 버릴 때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하천가에 버린다면 하천가를 오염시키는 것이겠다 싶어서 마음을 비웠다. 

 

백섬을 조각내서 쓰레기봉지에 담는데 마음이 쏴-하다. 

아무래도 올여름 장마비가 너무 오래 지속된 것도 백섬의 컨디션을 나쁘게 한 것 같다. 

베란다가 동북향이라서 원래도 햇살이 부족했지만 올여름은 비가 자주 와서 유난히 일조량이 부족했다. 

 

백섬을 담은 쓰레기봉지를 아파트 쓰레기통에 버리러 내려갔다. 

고사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네.

올여름에는 백섬을 떠나보내는구나. 

재작년 여름에는 하천가 집오리를 떠나보냈고 작년 가을에는 남은 집오리들을 모두 떠나보냈는데... 

살아 있는 것과는 언젠가는 이별이 오기 마련. 

삶은 죽음을 품고 있으니...

그래도 이별, 상실, 떠나보냄은 적응이 안 된다. 

 

내 마음처럼 창밖으로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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