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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21. 3. 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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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유희(1943)]는 20대 후반에 읽었다. 그리고 읽고 난 책을 처분하지 않고 책장에 지금껏 꽂아두었다.  [유리알 유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권 안 되는 소설책들 중 하나다. 이번에 책장을 정리하면서 [유리알 유희]를 한 번 더 읽어보기로 했다.

[유리알 유희]는 헤세의 노년작으로, 50대 중반부터 집필하기 시작해 10년이란 긴 시간이 걸려 완결해 60대 중반에 출간한 책이다. 헤세는 이 책으로 194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난 더는 이 소설책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이 바뀌어 이 책을 좀 더 꽂아두어야겠다로 결론지었다. 내게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20대에 읽었던 이 책의 내용 거의 대부분이 내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다는 것이다. 책을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분명 내게 특별한 인상을 주었을텐데 이리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니! 이 전기적 소설의 주인공인 유리알 유희의 명수 크네히트라는 인물이 흥미롭고 이 인물의 갑작스런 죽음은 충격적이라서 결코 잊기가 쉽지 않다. 세월의 망각의 힘이 이토록 강력한 것인지?

 

헤세가 상상한 카스탈리엔이라는 공간은 지적이면서 미적이고 도덕적인 플라톤적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크네히트는 바로 그 공간의 꽃이랄 수 있는 '유리알 유희'의 명수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추상적, 비물질적, 비시간적인 앎을 추구하던 카스탈리엔 사람들이 봉착할 미래의 위기를 내다보며 역사적, 물질적, 이기적, 본능적인 현실 세계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얼마 안 되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헤세의 소설에 대한 열광이 식기 시작한 것은 그의 소설이 둘로 나뉘어진 대립적인 단순한 틀을 가지고 있어 덜 흥미롭게 느껴지면서였다. [유리알 유희] 역시 다르지 않다. 카스탈리엔 안과 카스탈리엔 밖, 비시간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역사적인 것), 가지적인 것과 본능적인 것, 무사심한 것과 이기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추상과 현실...  카스탈리엔은 플라톤적 이상을 추구하는 공간이고, 카스탈리엔 밖은 권력투쟁, 이기심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카스탈리엔 사람들은 독신자로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오직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지만, 카스탈리엔 밖의 사람들은 연애, 가족, 자식에 연연하고 물질적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오히려 역사 역시 지적인 해석에 불과하며, 우리의 현실, 삶이라는 것은 구체적이며 체험적인 것으로 역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헤세의 이분법은 역시 지적인 두 가지 양태를 놓고 둘로 나누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있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왔던 '유리알 유희', '명랑성', '자각'이라는 개념에 대한 글들을 여기 발췌해둔다. 

 

노트-이어진 생각>

유리알 유희란?

-'완전한 것을 추구하려는 상징적 형식'이자 현상적 다양성을 넘어 내적 일치를 꾀하는 정신이고 신에 접근하는 것.

유리알 유희는 철학도 종교도 아니고, 독특한 훈련이며 예술에 가까운 데 특수한 예술이다.

피도 현실도 없고 역사적 요소가 빠짐.

수학, 음악, 명상은 유희의 중요한 요소.

특히 '고대와 기독교의 유산과 명랑하고 용감한 신앙정신, 그리고 비할 데 없는 기사도의 도의가 포함'된 고전음악을 중시.

'인간성의 비극을 알고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며, 그것이 용감하고 명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고전음악의 태도로 봄. 

 

"제가 생각하는 유희는 명상이 끝난 다음에는 바로 유리알의 표면이 중심을 감싸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희자를 감싸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균형이 잡힌 조화로운 세계를 우연하고 혼란된 세계에서 분리시켜 자기 마음 속에 끝여들였다는 느낌을 갖고 유희자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크네히트가 음악의 대가에게 보낸 편지 중)

 

우리 유리알 유희는 학문과 미의 예찬과 명상의 세 가지 원리가 전부 그 내부에 결합되어 있어. 그래서 진정한 유리알 유희자는 익은 과일이 감미로운 과즙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랑성으로 가득 차 있는 셈이야. 그는 무엇보다 마음속에 반드시 음악의 명랑성을 지니고 있어. 그러한 명랑성은 무엇보다 용감성, 다시 말하면 세상의 두려운 것이나 화염 속을 명랑하게 미소지으며 뚫고 지나가며 춤추고 가는, 그렇게 즐겁게 희생을 바치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제 9장 대화 중)

  

문법이나 천문학이나 수학, 혹은 음악과 같이 카스탈리엔 이전 시대부터 전해진 매우 오래된 학과에 대해서 명상적 정신훈련과 유리알 유희는 카스탈리엔 고유의 특색 있는 보물이 되었다.(제 10장 준비 중)

 

유리알 유희는 우리 자신의 발명품이고 전문이며, 사랑하는 자식이고 장난감이며, 특히 카스탈리엔다운 정신을 구현한 것으로서 가장 세련된 학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보물 가운데서 가장 귀중하면서도 가장 무익한 것이요,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가장 깨지기 쉬운 보석입니다. 카스탈리엔의 존속이 불확실해질 때에는 무엇보다 먼저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제 10장 준비 중)

유리알 유희는 말 그대로 유희, 놀이다. 일이나 노동이 아니다. 그래서 유익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리알이 그렇듯 깨어지기도 쉬운 것이다. 

최고의 지적인 작업은 놀이에 불과하며 그것은 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언제든 현실이 힘들어지면 낸던져진다. 하지만 아름답고 고귀하고 즐거운 놀이인 것. 

 

카스탈리엔

역사란 이기주의나 본능생활이라는 죄악된 세계를 재료로 하고 동력으로 삼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카스탈리엔의 숭고한 종단의 조직도 이 혼탁한 흐름 속에서 생겨나 언제 또 그 흐름 속으로 다시 휩쓸려 들지 모른다는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제 8장 양극 중)

 

폭력적이며 온통 밖으로 눈을 돌리는 시대의 말기에 나타난 이 진공상태와, 또 새로운 출발과 질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절실하고 애절한 동경이 카스탈리엔과 우리 존재를 실현시킨 것입니다. (제 10장 준비 중)

 

카스탈리엔은 세계 중에서 하나의 작은 세계이며 세계에서 대담하고도 강인하게 떨어져나온 하나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제 12장 전설 중)

 

-역사와 정신을 대립시키는 카스탈리엔 사람의 생각(테굴라리우스로 대변)

인간의 이기주의, 권력투쟁, 시간 속의 경쟁, 이익이나 권력, 재산을 얻기 위한 경쟁, 약육강식, 추악한 것, 악마적이고 지루한 것.

반면,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행위는 시간의 예속에서 탈출하는 것, 인간의 본능이나 타성에서, 시간에서 해방된 곳, 비역사적이고 반역사적인 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카스탈리엔 밖의 사람이 보는 카스탈리엔 사람들에 대한 생각(데시노리가 대변)

영원이 명랄하고 영원히 유희만 하며, 자신의 존재를 즐기고, 고통에 대해서는 초연한 신이나 초인이라도 우러러 보는 것 같았어. (...)

거세된 사람들, 인위적으로 영원히 유년상태에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어.(...)

그리고 일생동안 얌전하고 아무 위허성도 없는, 피를 흘리지 않는 유희를 하며, 방해가 되는 그러한 생명의 움직임이나 커다란 감정, 진정한 정열, 가슴속의 격동 같은 것은 명상요법으로 곧 억제되고 전향되며 중화되는 것이지. (...)

자네들은 거기서 비겁하게도 하는 일 없이 살고 있어. 악덕이나 번민이나 기아난 아무 맛도 없는 세계, 가정이나 어머니나 어린아이나 더욱이 여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가 아닌가? (...)

식량걱정도 없고 괴로운 여러가지 의무를 갖지 않고, 왕벌처럼 게으른 생활을 보내며, 지루함을 면하기 위해서 모든 전문적인 학문에 열심히 종사하고, 철자나 글자를 가르치며 음악도 하고 유리알 유희도 하고 있어. 

 

명랑성

진정한 명랑성, 하늘의 명랑성, 정신의 명랑성, 심각하고 깊이가 있는 명랑성.

이러한 명랑성에 도달하는 것이 나에게나 나와 같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목표 가운데서 가장 높고 가장 고귀한 목표인 거야.(...) 이 명랑성은 희롱도 자기 만족도 아니고, 최고 인식이며 사랑이요, 온갖 현실에 대한 긍정이야. (...)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이며, 나이 들고 죽음에 가까워짐에 따라서 더욱더 맑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지. 그것은 미덕의 비밀이며 모든 예술의 본연의 자세야.(...)

모든 민족과 언어가, 신화나 우주 생성설이나 종교로써 세계의 심오한 부분을 탐지하려고 애쓰는 경우에도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가장 높은 것은 이 명랑성이네.(...)

그(고대 인도인의) 정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해 온 것은 맑은 명랑성이지. 속세의 정복자나 부처님의 미소의 속성은 명랑성이야. 의미가 깊은 신화의 인물은 명랑한 사람이지. (...) 결국 더욱 기울어져가는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웃고 춤추는 시방에게 짓밟히고 파멸되기에 알맞게 되지.....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꿈꾸는 비슈누(우주를 유지하는 신)의 미소로써 다시 시작되네. (제 9장 대화 중)

인생은 비극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생에서 명랑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 흥미롭다. 

 

각성

오늘의 각성도 새로운 환경에 처한 자신을 재발견하며 새로운 상태에 순응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제 12장 전설 중)

 

미덕이라는 것은 결국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는 것이며,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며, 아마 어느 정도는 자기가 주인이고 주동적이거나 한 듯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며, 인생과 자기현혹, 그리고 자주적인 결정과 표면적으로 책임을 가장한 영상을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요, 아직 모르는 원인에서 근본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보다 많이  행동에 옮기며, 정신적이기보다는 훨씬 본능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

이와 비슷한 사상과 몽상도 그의 명상의 여운이었다. '각성'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와 인식이 아니라, 현실과 그것을 체험하고 그것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각성시에 있어서는 사물의 핵심이나 진리에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놓인 사물의 상태에 대한 자기 태도를 파악하여 밀고 나가거나 참는 것뿐이었다. 그때 발견하는 것은 법칙이 아니라 결심이었다.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에 이르는 일이었다. (제 12장 전설 중)

 

사실 그 각성을 신이나 마귀나 절대적 진리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체험이 무게와 설득력을 지닌 것은, 그것이 진리를 내포하거나 높은 곳에서 온 것이나 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인 까닭입니다. 너무나 현실적입니다.(제 12장 전설 중)

 

저의 생활은 초월하는 것이어야 하며, 한 계단씩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음악이 주제와 속도를 차례대로 정리하며 연주를 끝마치듯, 피로한 줄도 모르고 잠도 자지 않고 언제나 깨어 있듯이 공간을 하나씩 밟고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각성과 체험에 관련해서 그러한 단계와 장소가 있다는 것과,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언제나 쇠퇘해서 죽어버리는 것을 원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며, 그것이 또한 새로운 곳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각성이며,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제 12장 전설 중)

현실로부터 오는 각성, 그것은 결심하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각성에 대한 글들을 읽다 보면 크네히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크네히트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측하지는 못했겠지만 만약 그가 죽음 이후 자신의 죽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비극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기타 생각할 거리>

자기 자신과 현재의 상태와 건강, 힘의 안배와 희망, 근심 같은 것을 인식하고 헤아려서 하루하루의 일을 객관적으로 보며, 무슨 일이든지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은 밤이나 다음날로 넘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제 6장 유희의 명수 중)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지정된 길을 곧장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길과 자기의 길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제 7장 재직시절 중에서)

 

"좀봐. 하늘에 띠를 두른 듯 흐르는 구름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가장 검은 부분이 깊은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검고 흐린 부분은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 깊은 공간은 이 구름의 산기슭과 계곡에서 시작해서 무한한 허공 속으로 잠겨드는데, 바로 거기에서 별이 반짝이고 있지. 엄숙하고, 우리 인간에게는 명철함과 질서의 최고 상징으로서 별이 반짝이고 있는 거야. 세계와 그 신비의 깊이는 검은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맑고 밝은 부분에 있네. 부탁일세. 자기 전에 잠시 별이 가득 찬 항만이나 해협을 바라보게. 그리고 그때 어떤 생각이나 꿈이 떠오르면 그것을 물리치지 않도록 하게."(크네히트가 데시뇨리에게 한 말, 제 9장 대화 중)

 

"공포와 심한 고난의 시대가 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행에 처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행복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정신적인 행복이외에는 없습니다."(제 10장 준비 중)

 

소중한 하루하루가 사라져가는 것을 우리는 기꺼이 바라보노니, 그것은 더욱 소중한 것이 무르익어가는 것을 보기 위함이리라. 마치 우리가 뜰에 심은 진귀한 식물이나 우리가 교육하는 어린아니, 그리고 우리가 쓰고 있는 작은 책과 같이.(제 12장 전설 중)

 

그처럼 우리 오관의 쾌감도 느끼자마자 불만으로 변한다. 

모든 것은 썩고 시들어서 죽어야 한다는 인식이 이미 깃들여 있기나 한 듯이.(옛 철학서를 읽고서 중)

 

무릇 일의 시작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여 있다.(...)

우리는 모든 공간을 하나씩 밟고 명랑하게 올라가야 한다. 

어디서나 고향 같은 애착을 느껴서는 안 된다. (...)

항상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마비된 습관에서 벗어나리라.(계단 중에서)

 

나는 유리알 유희적 요소인, 지적 작업, 미적인 추구, 명상을 내 삶의 즐거운 놀이로 여겨왔고 그것들은 내 일상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어쩌면 그런 점이 이 책을 아직도 책장에 남겨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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