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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씨 이야기]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21. 3. 2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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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좀머씨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다시 한 번 더 읽어보았다.

이번이 세 번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좀머씨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책인데,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1992년에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는 분명하게 생각이 나질 않는데... 헌책더미에서 구한 것이었던 것 같다. 

많은 책들을 없앴으면서도 이 책만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장 자크 상페(Jean-Jacques Sempé)의 그림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장 자크 상페의 그림 팬이기 때문이다. 그가 삽화를 그린 책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들을 모아둔 책도 여러 권 책장에 꽂아두고 좋아하고 있다. 

아무튼 그의 그림이 [좀머씨 이야기]에 좀더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좀머씨 이야기]는 화자인 내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추억담이다.

그 추억담 속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동네남자 좀머씨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매일 빠르게 걷기만 했던 남자, 그리고 결국에는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 생을 마감한 남자.

그 남자가 생의 마감하는 순간을 우연찮게 화자가 목격했고 그 목격담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온 나.

 

좀머씨는 왜 매일매일 지치도록 걸으며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마침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충분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좀머씨가 좀더 일찍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아내의 존재와 쉼 없이 걷는 활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걷는 동안 좀머씨는 자신의 고통,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내면적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고통을 견뎌낼 힘을 얻었으리라 본다.  하지만 아내의 상실로 인해 자신의 걷기를 이어갈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자연스레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다.

 

좀머씨처럼 극단적인 걷기는 아니더라도 매일 일정하게 수 시간을 걷는 데 바치고 싶다는 유혹을 나도 느끼곤 한다. 

걷는 일은 확실히 나를 평화로, 때로는 기쁨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좀머씨 이야기]의 좀머씨란 인물에는 작가는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시킨 것으로 보인다.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쳤던 좀머씨처럼 작가도 자신의 삶에 개입하려는 자들에게 똑같이 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좀머씨, 그리고 파트릭 쥐스킨트 작가에게 무척 공감이 된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사람과의 단절이 일상화된 삶이 오히려 더 단순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나날들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평화를 얻으려면 깊이 있는 소수의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가는, 너무 많은 인간관계는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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