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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 웃음살인 미스터리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21. 4. 1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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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는 추세인 요즘, 도서관 가는 걸 피하고 집에 있는 책을 읽고 있다. 

가지고 있는 소설책 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을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았다. 

이 소설을 읽은 지가 6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세세한 스토리가 전혀 기억나질 않았다. 기억의 휘발성이 대단해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미스터리물은 기억이 나질 않아야 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의 스토리를 살펴 보면  여기자 뤼크레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프랑스 최고의 코미디언 다리우스의 죽음이 살인일 거라 생각하며 그 사건의 살인용의자를 차례로 짚어나간다. 뤼크레스는 이 과정에서 전직 기자인 이지도르의 도움을 청하고 이지도르와 함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예상치 못한 살인범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내게는 이 미스터리가 성공적이다. 

물론 다리우스의 코미디를 삽입한 부분은 그다지 웃기지 않았다. 문화적 차이인지... 나의 웃음 코드가 다른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유머기사단의 [유머역사대전]의 이야기는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 실제하는 역사에 상상력을 가미해서 유머사를 만들어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창의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대개 소설책은 도서관에서 주로 빌려 읽는 편인데 이 책을 굳이 구입한 이유는 '웃음'이라는 소재에 대한 관심과 내가 좋아하는 브르타뉴의 카르낙, 몽 셍 미셸과 같은 장소가 배경이기 때문이었다. 웃음 기사단의 비밀 장소가 모르비앙의 섬, 카르낙의 성당 지하, 몽 셍 미셸 섬이라니! 스토리의 흥미로움이 더했다. 

노트>

1."반면에 나는 섬세하고 미묘한 유머를 좋아해요. 자신을 조롱하거나 삶의 부조리와 모순을 드러내거나 언어의 묘미를 보여주는 유머를 좋아하죠. 트리스탕 마냐르가 바로 그런 유머의 달인이었어요. "(이지도르의 말)

소설 속에서 어둠의 유머와 빛의 유머를 대비시키는데 다리우스의 유머는 어둠의 유머, 트리스탕 마냐르의 유머는 빛의 유머로 대비된다. 뤼크레스는 다리우스의 유머를, 이지도르는 트리스탕의 유머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온다.

2."유머는 일탈 또는 금기의 위반을 바탕으로 작동합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중압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유용성이 있죠. 그런가 하면 유머는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조롱하는 것은 알고 보면 여자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뢰벤브뤼크 교수의 말)

유머는 불행감을 견디고 권태를 벗어내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다. 

3."우스운 이야기란 사고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도록 정해주고 나서 막판에 예상 밖의 것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균형의 상실을 야기합니다. 이를테면 정신이 발을 첫디디고 쓰러지는 셈이죠. 정신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일단 사고의 흐름을 차단하고 시간을 벌려고 합니다. 앙리 베르그송은 희극적인 것이란 <살아 있는 것에 끼어든 기계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카트린 스칼레즈 박사의 말)

앙리 베르그송의 '희극'에 관한 책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4. "카르나크. 이 지명은 켈트어로 작은 언덕을 뜻하는 <카른>에서 유래했다. 이 고장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45만 년 전의 일이다. 이곳은 일종의 성지였던 듯하다. 7천 년 전에 이곳 주민들은 길이 125미터, 너비 60미터에 높이가 1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봉분을 건설했다. 그들은 이 무덤에 자기들의 우두머리를 값비싼 부장품과 함께 매장했다. 그로부터 천 년 뒤에는 열석을 세웠다. 이 열석 유적은 2934개의 선돌로 이루어져 있다. 커다란 바윗돌을 다듬어 열두 줄로 배열해 놓았는데 각각의 열은 거의 완벽한 직선을 이루고 있다. 가장 큰 선들은 높이가 4미터에 달한다. 선돌의 크기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가장 작은 선돌은 6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뤼크레스가 참고한 '카르나크')

Carnac은 한동안 내가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곳의 열석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갈망하는 동안에는 이곳에 갈 일이 정말로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날 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직접 열석을 내 눈으로 보았다. 참으로 신기하고 대단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열석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눈으로 본 광렬한 광경 중 하나로 이 카르낙의 열석을 들 수 있다.

5. "바보를 상대하는 방법은 단 하나, 칭찬."(이지도르의 말)

6. "유머 기사단의 일원이었던 작곡가의 음악이라서 틀어 주는 것일세. 일종의 맛보기라네. 에릭 사티는 정말 천재였네. 어떻게 하면 음악에 유머를 담을 수 있는가를 놓고 심오한 연구를 했지. 이 음악은 유머 기사단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영혼들을 위한 작은 걸작일세."(스테판의 말)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에릭 사티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음악가인데, [짐노페디]의 매혹에서 시작해 에릭 사티의 음악을 샅샅이 찾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급기야 에릭 사티의 악보까지 구매했다.  [웃음]을 다시 읽고 있는 요즘, 가끔 그의 곡 [짐노페디]를 쳐보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곡이다. 그런데 그 곡을 '유머기사단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영혼을 위한 걸작'이라고 표현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박수를 보내고 싶다. 

7."텅 비어 있는 것을 경험해봐야 가득 찬 것의 가치를 알게 되죠. 수도사들은 말하는 것의 기쁨을 알기 위해 침묵 서원을 하고 음식의 참맛을 알기 위해 금식을 합니다. 또한 정적을 알아야 음악을 제대로 즐기게 되고 어둠을 경험해야 색깔의 참된 가치를 이해하게 되죠."(이지도르의 말)

비어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동양사상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래서 하루를 잠자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본다. 휴식에서 시작하는 것. 일이 먼저고 휴식이 나중이 아니라 쉼이 먼저고 활동이 나중.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생각은 아니지만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8."우리는 그것을 <어둠의 유머>라고 부르죠. 남의 불행을 소재로 삼아 웃기는 것. 이방인들을 조롱하면서 웃기는 것, 여자들이나 지적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폄하하면서 웃기는 것, 남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웃기는 것. 그런 게 바로 어둠의 유머예요."(베아트리스의 말)

지금도 이런 저질 유머를 일삼는 개그맨, 코미디언을 쉽게 만나게 된다. 유머의 질을 낮추는 자들. 

9."살인소담에 관한 전설은 정말이지 모든 유머리스트의 신화예요. 그리고 내가 의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믿음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진정으로 믿으면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죠."(카트린 스칼레즈 박사의 말)

믿음이란 우리 삶에서 배제시킬 수 없는 것이지만 믿음이 얼마나 진실을 왜곡하고 비합리적 사고로 이끄는지는 일상 속에서 수없이 목격하게 된다. 

사족 하나>이 책을 읽으면서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여러 번 마주쳤다. 예를 들면, 아딧줄, 해웃값, 유사, 기신기신, 는개비...... 소설책 속에서 모르는 단어를 만나는 일이 흔치 않은 데 적지 않은 단어들의 뜻을 사전에서 찾는 일이 신선했다. 우리 말을 배워가는 단계에서 사전을 찾아 단어를 익히는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사족 둘>이 소설책은 더는 보관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스토리의 폭력성이 피로하다.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들 가운데 그 어떤 소설보다 소재가 참신하고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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