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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화차] 과도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 남발을 소재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22. 7. 2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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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화차] 책 표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내가 그녀의 소설 가운데 읽지 못한 몇 안 되는 소설이었다. 

1992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 우리나라에서는 문학동네에서 2012년에 번역출간했다. 소설 자체는 벌써 30년이 된 오래 전의 소설이고 번역서를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10년전 책이다.

이 소설은 변영주 감독이 [화차(2012)]란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영화를 본 지도 벌써 4년 전. 

4년 전 영화 [화차]를 보고 소설을 읽어 보겠다고 하고도 세월이 한참 흘렀다. 드디어 이 소설 읽기를 끝내서 감개무량.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미스터리에 속하는 [화차]는 70년대 중반 이후 집값이 뛰면서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를 하겠다면 무리한 주택담보대출을 얻었다가 집값이 폭락하면서 파산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사회현상과 신용카드의 남발로 현금서비스의 높은 이율로 인해 카드 돌려막기, 카드깡을 하다가 파산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사회현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집에 투자하겠다면서 무리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습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지는 소설이다. 

소설의 도입부는 사라진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며 아내의 사촌의 아들인 가즈야가 형사 혼마 슈스케를 찾아온 일이다. 

소설의 주된 라인은 혼마 슈스케가 세키네 쇼코를 찾아나선 후 세키네 쇼코가 알고 보니 신조 교코임을 알게 되고 세키네 쇼코의 행방과 신조 교코의 행방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된 스토리 라인 이외에 부차적이지만 혼마의 아들인 사토루의 친구 강아지 멍청이가 행방불명되고 멍청이의 행방을 찾는 것, 또 혼마의 동료인 이카리가 담당한 살인 사건에 대한 것도 더해져 있다. 부차적 스토리 라인은 반려동물을 버리는 행태와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으려는 자의식의 성장과 관련된다. 

여성 작가답게 소설의 인물이 상투적이지 않아 흥미롭다. 

사토루를 돌봐주는 혼마의 가사도우미인 50대 남성 이사카, 치정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여자 동료와 함께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그리고 무엇보다 살인을 불사해서라도 신분세탁을 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공 신조 교코. 이 인물들은 기존의 미스터리에 등장하지 않는 낯선 인물들이다. 

"현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어. 여자 중에도 남자 못지 않은 동기로, 예를 들면 사업을 하고 싶으니 그것을 방해하는 인간을 배제해야겠다는 식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생겨났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녀는 그런 곤경을 온전히 혼자 힘으로 감당해왔다. 그럴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단독으로 움직인다. 그녀는 혼자다. 그 누구의 심정을 헤아릴 필요도 없거니와 그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는다. (...)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그런 여자다.그리고 그런 여자는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화와 달리 인물이 다양하고 더 복잡하다. 영화 속에서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형사와 관련된 인물들을 모두 제외시켜 버렸다. 혼마 형사가 아니라 주인공의 약혼자가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영화와 결정적인 차이점은 결말부분. 

영화에서 신조 교코에 해당하는 인물인 차경선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소설 속 신조 교코는 자살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열린 결말이니까 자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메모> 고향과 관련한 대목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인간은 새것을 사서 대체할 수 있는 대상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새로 바꿀 수 있는 것을 고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도쿄에 있는 인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뿌리 없는 풀이며, 대부분은 부모, 혹은 그 부모의 부모가 가지고 있던 뿌리의 기억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뿌리의 대부분은 이미 힘을 잃었고 이들을 부르는 고향의 소리도 이미 쉬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부초 같은 인간이 늘어만 간다. 혼마는 자기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업무상 이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의 예기를 듣다가 상대의 말 속에서, 어미에서, 억양에서, 어휘 선택에서 그 사람의 '고향'을 또렷하게 추측하게 만드는 부분이 느껴질 때면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곤 했다. 무리지어 놀다 어느새 해가 지고, 친구들은 하나둘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자기를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어린애 같은 심정이다.(P.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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