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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클로저] 미디어가 양산하는 트랜스젠더 이미지

볼영화는많다/성적 다양성

by 산삐아노 2022. 8. 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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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젠더를 가까이서 본 적이 세 번 있었다. 2명은 트랜스 남성이었는데 이성애자였고, 1명은 트랜스 여성이었는데 동성애자였다.

트랜스 남성은 각각 일본인과 한국인이었는데, 모두 여성 애인이 있었고 호감이 가는 인상에 상냥했다. 

트랜스 여성은 네덜란드인이었고 상냥하긴 했지만 호감이 가진 않았다. 불편했다고 해야 하나? 

그 밖의 트랜스젠더는 하리수처럼 직접 만나진 못했고 모두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실제로 만난 트렌스젠더 3명 중 2명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나의 트렌스젠더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거두진 못했다. 매체에서 접한 트랜스 젠더의 이미지가 훨씬 더 내 의식 속에 깊히 새겨졌던 모양이다. 나는 분명 트랜스 젠더에 대해 불편함, 혐오가 있었던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혐오감을 가진다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낯섬에서 오는 부정적 감정이 생긴 지도 모른다. 그래서 트랜스 젠더와 관련한 픽션 영화, 다큐, 예능 등을 찾아보는 편이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본 [디스클로저]는 트랜스 젠더에 대한 나의 인식에 큰 발전을 가져다 준 것 같다. 

감독, 배우, 작가 등으로 활동하는 미국의 트랜스젠더들이 인터뷰를 통해 미디어가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를 어떻게 양산해왔고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담아 만든 다큐멘터리다. 

초창기 미국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는 크로스드레서와 혼동되었다는 것,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면서 흑인 남성을 여성으로 분장시켜 등장시켰다는 것,

트랜스 여성을 희화화시켜 조롱거리로 삼다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등으로 위험하고 폭력젹인 존재로 등장시켰고, 이후 트랜스 여성은 의학 드라마에서는 호르몬 처치로 암에 걸려 죽는 존재로, 범죄 드라마에서는 살인의 희생양으로 등장한다. 

미디어에서 트랜스 남성은 거의 다루지 않는데, 그 이유는 트랜스 여성이 트랜스 남성에 비해 성상품화하기 좋기 때문이라는 것, 트랜스 남성이 미디어에 등장했을 때는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폭력적이 된 존재로 다루었다는 것.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주요 미디어는 트랜스젠더를 거의 다루지 않고, 남성 동성애자를 희화화하는 단계를 조금씩 넘어가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요즘 레즈비언의 존재도 미미하지만 다루기도 하는 것 같은데, 트랜스 남성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미국인의 80%가 사적으로 아는 트랜스 젠더가 없어 미디어가 만들어낸 트랜스 젠더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나만 해도 친하지는 않지만 트랜스 젠더를 만난 적 있는 사람도 트랜스 젠더에 대해서는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트랜스 여성의 이미지로 판단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미디어는 다수의 이성애자들이 다양한 것 만큼 성소수자도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크게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의 다양한 이미지를 미디어로 만들려면 그 만큼 성소수자인 감독, 프로듀서, 배우, 작가가 필요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가 다양해지는 것도 트랜스젠더인 감독, 프로듀서, 작가, 배우가 현장에서 뛰기 때문이니까. 

트랜스 여성이 아닌 이성애자 남자배우가 트랜스 여성의 연기를 하는 것은 트랜스 여성을 남성이 여장한 것이라는 인식을 굳힐 수 있기에 좋지 않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 미국만 해도 트랜스 여성이 너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트랜스 여성 역할에서 배제하고 오히려 시스 남성 배우를 트랜스 여성에 채용했다는 이야기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트랜스 여성의 역할이 미디어에 거의 존재하지 않고 그 역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트랜스 여성 배우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 영역 속에서도 약자이고 심지어 게이들에 의해서 트랜스 여성에 대한 혐오, 여성페미니스트에 의한 트랜스 여성의 혐오, 레즈비언에 의한 트랜스 남성의 혐오가 존재한다고. 게이의 경우는 트랜스 여성이 남성성을 부정한다고 여겨서, 여성페미니스트는 트랜스 여성이 시스 여성의 몸을 탐한다는 이유로, 레즈비언은 트랜스 남성이 여성성을 부정하는 이유로 혐오감을 가진다는 것. 

내가 트랜스 젠더에 대한 대한 부정적 인식, 의심과 혐오를 가지게 된 것도 트랜스 여성의 과도한 여성성, 트랜스 남성의 과도한 남성성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이유였던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인데, 왜 한 쪽편을 희생시키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트랜스 젠더는 기존의 남녀의 성역할 고착화에 부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럼에도 현실 속에서 트랜스 젠더는 분명 존재하고 그들 역시 다양하며 미디어가 특정한 이미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또 트랜스 젠더란 이유로 각자가 가진 잠재력,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취업의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트랜스 젠더란 이유로 폭행, 강간, 살인과 같은 범죄의 타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사실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존재다. 자연적이지 못하기에 잘못이라는 논리는 잘 들여다 보면 설득력이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고, 자연을 뛰어넘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이니 자연적이지 않니 하는 논쟁은 진부하다. 오히려 공존의 해가 되느냐 아니냐가 잣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트랜스 젠더가 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이미 존재하며 그들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해악도 아니고 오히려 존재하는 만큼 함께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시스 젠더 중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이가 있고 들지 않는 이가 있듯이, 트랜스 젠더 중에도 내 마음에 드는 이도 있고 들지 않는 이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트랜스 젠더라는 범주를 설정하고 그 범주에 드는 알지 못하는 모든 이를 싸잡아서 혐오한다면 그 혐오하는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범주를 타깃으로 삼는다는 것은 진실과 무관한 정치적 행위이다. 

약자는 약자이기에 훨씬 더 비판적인 눈을 가질 수 있고, 그 만큼 더 진실에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남성이 여성의 이미지를 양산해온 방식, 그리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의 이미지를 양산해온 방식, 시스 젠더가 트랜스 젠더의 이미지를 양산해 온 방식은 분명 권력을 쥔 자들의 시선이며 진실은 아니다. [디스클로저]는 바로 시스 젠더가 만들어낸 트랜스 젠더의 왜곡된 이미지를 제대로 들여다 볼 것을 호소한다. 그 호소는 적어도 내게는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범주에 대한 혐오는 나의 무지만 드러낼 뿐이며 내 권력을 지키려는 옹졸한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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