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함박눈이 내린 오전, 무조건 산책을 나가고 싶었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니 길가의 나무가지 위에도 벤치 위에도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마치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 속 풍경에서처럼 나무가지에 쌓인 눈은 연말의 정취를 느끼게 해줘서 마냥 보기 좋다.
지난 여름 혹독한 가뭄과 더위로 고생하던 나무 위에 소복히 내려앉은 눈이 위로를 전하는 느낌이라면 순전히 내 생각이겠지.
아직 미처 잎을 떨어뜨리지 못한 나무에도 눈이 쌓여 그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이웃 아파트 정문 옆에 서 있는 보기 싫은 청동상 위에도 눈이 쌓여 마치 흰 모자, 흰 목도리를 둘러 준 듯 한결 보기 편하다.
잠시 신호등 앞에서 멈춰서 있는데, 신호등의 붉은 빛이 주변의 새하얀 빛 속에 두드러지는 것이 예쁘다 싶었다.
눈을 덮고 달리는 차량들은 전조등을 밝혀 회색빛 습기찬 대기 속을 서둘러 빠져나간다.
가로수들도 흰색 옷을 걸쳤다.
하천가의 풀들이 잘린 자리에도 눈이 자리를 잡았다. 온통 하얗다.
역시 눈 오는 날에는 빨강 옷이다.
확실히 눈과 선명하게 대비되서 눈에 띤다.
오리들은 눈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는데... 청둥오리 숫컷이 유유히 헤엄친다.
청둥오리 암컷도. 오리들에게 눈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나 보다.
눈 때문에 하천가의 풍경은 완연한, 낭만적인 겨울 풍경이 되었다.
마른 풀 위의 눈의 조화가 이리도 아름답다니!
갯버들 가지 위에도 이파리 위에도 눈이 보송보송.
눈뭉치가 된 물억새, 큰고랭이...
불현듯 솜사탕이 떠오르네.
하천가 나무의 잎들도 미처 낙엽이 되질 못하고 눈을 맞았다.
풀밭인가 눈밭인가
겨울철새인 청둥오리들이 하천 여기저기서 눈에 띤다.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산물인 오픈 스쿨의 노란색이 유달리 눈에 띤다.
이 다리를 건너 조금 걸어가면 평소 밥을 주는 유기오리들이 지내는 곳이다.
오리들이 잘 지내는지 기웃거렸다.
오리들은 무사하다. 물 속에 먹을 것이 있는지 열심이다. 반갑다.
눈오는 날은 오리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지 않는가 보다.
오리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눈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주변의 익숙하고 평범한 풍경이 함박눈 덕분에 특별해진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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