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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사랑: 테리와 팻의 65년] 72년을 함께 한 레즈비언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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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삐아노 2022. 9. 1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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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사랑: 테리와 팻의 65년] 영화 포스터(The movie database에서 다운로드)

어떤 커플이 72년을 함께 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놀랍다. 

하지만 그 커플이 법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드러내고 함께 하기 어려운 동성커플이라면 어떨까? 

[그들만의 사랑: 테리와 팻의 65년(2020)]이 바로 72년을 함께 한 레즈비언 커플의 노년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원제는 'A secret love'다. 비밀사랑. 원제가 더 적절한 제목으로 보인다. 80대가 될 때까지 60년 이상을 함께 살면서 서로가 커플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면서 살았다는 사실을 볼 때 긴 세월의 비밀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제목은 도무지 이해가 될지 않는다. '그들만의 사랑'은 무슨 뜻이며, 테리와 팻의 65년은 또 무엇인지? 이들은 72년을 함께 했다고 영화에도 나오는데...

이 영화를 연출한 크리스 볼란(Chris Bolan) 감독은 테리가 딸처럼 키운 조카 다이애너 볼란과 성이 같고 grandaunt(대고모, 고모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으로 미뤄 봐서 다이애너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아무튼 감독은 테리와 팻 커플이 함께 한 지 만 65년이 되는 때부터 촬영해서 테리가 사망하기 2년 전까지를 영화에 담았다.

테리는 2019년에 사망했다.

팻이 18세 때, 테리가 22세 때 처음 만났고 팻이 테리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하면서 관계는 시작되었다. 그때가 40년대 후반.

당시만 해도 동성커플에 대한 혐오가 대단해서 커플관계를 감히 드러내고 지낼 수는 없던 때였다.

특히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까지는 미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시되던 시절이었고 그 억압이 대단했을 때였다.

테리와 팻은 둘다 캐나다인이지만 프로 운동선수로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만났다.

테리는 프로 소프트볼 선수이기도 했고 하키선수이기도 했다고 한다. 팻과 만난 것은 하키선수일 때.

팻만 해도 테리를 만나기 전에 4명의 남자와 결혼할 뻔했지만 모두 사망했기에 결혼할 수 없었다고 하니까, 테리를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각자 남자들도 사귀기도 했다고.

테리도 자신이 동성애인과 사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팻이 고백했을 때 무척 놀라고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후 이들은 인테리어관련 회사에서 근무했고, 같은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같은 직장과 같은 집에서 살면서 아마도 '사촌'으로 행세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여자 둘이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것이 이상한 시절이었나 보다. 지금이라면 여자 친구 둘이 산다고 하면 그러려나, 할텐데.

직장에 다닐 때는 둘다 화장을 하고 여성적인 복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었다고. 그리고 클럽, 술집 같은 곳에서는 절대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집을 단속해서 동성애자들을 체포해가는 시절이었으니까, 절대적으로 조심하면서 산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자인 친구들과 사적인 모임을 집에서 하는 정도였다. 부모, 형제자매, 친척, 친구, 동료 그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고 살았다. 이들이 커밍아웃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한지 62년이 되었을 때. 그렇다면 80대가 되어서 비로소 가까운 사람에게 커밍아웃한 것이다.

테리가 파킨슨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서 커밍아웃을 한 것 아닐까?

테리는 딸처럼 돌본 조카 다이애나에게 커밍아웃하면서 혹시나 자신을 멀리 할까봐 무척 걱정을 했지만 다이애나는 테리를 엄마처럼 사랑하고 있었고 테리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테리가 죽을 때까지 다이애나는 변함없이 이들 커플을 지지했고 도움을 주었다.  팻은 남동생에게 커밍아웃했지만 동생의 호모포비아를 맛보아야 했다. 테리의 친지가 팻의 친지에 비해 더 열려 있는 상태로 보였다. 그 만큼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보여진다. 

다이애나는 파킨슨병에 걸린 테리의 일상이 좀더 쉬워지도록 요양시설을 알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팻은 26년간 산 정든 집을 처분하고 요양시설에 가기가 싫다. 그래서 요양시설에 내야 하는 월세가 비싸다, 다이애나 집 근처의 요양시설을 간다면 너무 추워서 싫다 등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요양시설로 가기를 주저한다. 결국 테리의 병세가 더 나빠지고 다이애나의 설득에 의해 둘은 캐나다가 아니라 살고 있는 미국 시카고의 시설을 선택하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사실 나이든 커플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려서 죽음이 가까워져 평소 살던 집과 물건을 정리하고 요양시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은 레즈비언 커플만이 당면한 문제는 아니고 노년의 커플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문제다. 

이 영화를 보다 보니까, 80세가 넘도록 살게 되어 병든 노년의 일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어쨌거나 주저했던 팻도 시설의 생활에 대해 만족하고 시설에 들어간 후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한다. 긴 세월을 함께 하고 난 뒤의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보는 관객인 나도 울컥했다. 80대에야 결혼을 할 수 있다니! 물론 우리나라는 80대라고해서 동성커플이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사랑하면 살아온 커플의 삶이 동성커플의 삶이건, 이성커플의 삶이건 그리 다를 건 없다고 본다. 

영화 속 테리와 팻은 미국에서의 시설생활을 접고 마침내 테리의 조카 다이애나가 처음 제안했던 대로 캐나다로 다시 이주한다. 단촐하게 짐을 꾸려서. 아마도 시설에서 4년동안 산 것 같다. 그리고 캐나다에 가서 테리는 2년을 더 살았다. 테리가 2019년에 사망했는데, 사망 당시 테리와 팻은 72년을 함께 한 상황이었다. 둘다 90대. 

72년을 함께 살다니! 정말 놀랍다. 

이성커플도 72년을 함께 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파트너와 평생을 같이 한다는 것, 오늘날은 더더욱 힘든 시절로 보인다. 연애도 자유롭고 이혼도 흔하니까. 

이들의 함께 한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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