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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거품], 미학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우울한 로맨스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20. 12. 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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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무드 인디고]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 영화의 원작인 보리스 비앙(Boris Vian)의 [세월의 거품(L'écume des jours]을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찾은 책은 웅진씽크빅에서 2009년 이재형 번역으로 출간된 번역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이 책은 불어 원서로 읽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스 비앙의 언어 유희를 한글 번역에서는 제대로 맛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래 이 소설은 1947년에 출간되었는데, 프랑스 평론가들에게 외면당하고 사후에 높이 평가받은 작품이다.

알고 보니 보리스 비앙은 39세에 심장마비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세월의 거품]은 내가 지금껏 읽었던 그 어떤 소설과도 다른 소설이었다. 

시각적으로 감각적이면서 화려한 색감을 떠올리게 하고, 작가가 좋아하는 미국 흑인재즈음악을 떠올리면서 읽게 되는 음악적 소설이기도 하다. 흑인 재즈음악을 잘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소설 속 묘사는 마치 꿈속의 기괴하고 과정된 경험 같다.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보리스 비앙의 소설들이 폭력적이라고 평가받는데, 끔직하고 폭력적인 장면들도 적지 않다.

 

사실상 줄거리는 단순하다. 콜랭이라는 부자 청년이 클로에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지만 얼마 후 클로에가 병에 걸려 가산을 탕진하고 돈을 벌기 위해 힘든 육체노동까지 하지만 결국 클로에는 죽는다. 또 한 편 콜랭의 절친인 시크 역시 알리즈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만 철학자 장 솔 파르트르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알리즈와의 사랑을 포기한다. 알리즈는 시크를 얻기 위해 장 솔 파르트뿐만 아니라 그의 책을 파는 서점 주인들까지 살해하고 화재가 난 서점에서 불타 죽고 시크는 집착적 취미에 돈을 쓰느라 세금을 내지 않아 경찰들에게 살해당한다. 결국 두 쌍의 연인들의 사랑은 모두 죽음을 향하고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콜랭 역시 클로에의 시신을 버린 물 속을 내려다 보다 물 속에 빠져죽던지, 너무 쇠약해져서 죽던지, 자살을 하던지 할 것으로 예측된다. 콜랭 곁에서 지내던 쥐 역시 고양이의 거짓 유혹에 빠져 먹혀 죽는다. 

 

원작 소설은 영화 [무드 인디고]보다 결말이 훨씬 처절하고 끔찍하고 비극적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원작 소설보다는 각색하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영화쪽이 더 마음에 든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왜 제목을 '세월의 거품'이라고 지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 사랑을 하는 동안은 현실의 비극적 측면을 보지 못하고 거품이 낀 현실, 꿈결같은 현실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거품'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 같다. 또 저자가 쓴 소설의 표현들이 과장되어 있어 거품이 낀 표현이기에 그런 제목을 단 것은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은 어쩌면 비극적 현실을 가리는 거품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더불어 해보았다. 

 

한글 번역서의 표지 그림이 마리 로랑셍의 작품인데, 이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지같다.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의 표지로는 헨리 다거의 그림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이미지를 상상해보느라 책 읽는데 그 어떤 소설책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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