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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세상의 봄] 상, 다중인격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20. 9. 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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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확진자 증가로 도서관의 종합자료실은 문을 닫았다. 

그래서 8월에 예약해둔 미야베 미유키의 [세상의 봄] 상권도 언제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예약도서를 찾아가라고. 

도서관 입구에서 책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잠깐 주저했다. 도서관에 가야할까, 말아야 할까?

하지만 [세상의 봄] 하권을 8월초에 읽고 이제서야 상권을 읽게 되었는데, 지금 포기하면 언제 이 책을 읽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도서관 책도 반납해야 했다. 연체한다면 언제까지 미뤄야 할지... 코로나 증가세가 언제 꺾일지도 알 수 없고...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도서관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받고 예약도서를 찾았고 빌린 책도 반납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받은 [세상의 봄(비채, 2020)] 상권.

워낙 대기자가 많은 책이라서 하권부터 읽는 쪽을 선택해서 뒤늦게 읽는 상권이 흥미로울지...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의 글솜씨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미스터리물임에도 전혀 흥미가 반감되지 않았다. 

 

[세상의 봄] 상권은 다키의 아버지가 죽고 다키가 외사촌동생 한주로에 이끌려 고코인에 가서 다중인격인 전번주 시게오키 곁을 지키기 되면서 그의 상이한 인격들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연금된 시게오키 곁에서 그가 다중인격이 된 이유, 진실을 찾기로 한 사람들, 오리베, 다키, 한주로.

아직까지는 그 진실의 중심부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진실을 중심부로 한걸음씩 들어간다. 

이토 나리타카(신쿠로)의 고향마을 이야기, 신쿠로와 다키의 관계, 시게오키의 부친 살해, 백골의 발견, 시게오키의 인격 중 하나인 천박한 여인의 말까지.

이미 이야기를 알고 있는 데도 이야기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도대체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거짓말과 침묵을 헤치고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노트>

기타미 번에는 곤보 후가 시행한 '인마일구령'이 있다. 사람도 말도 똑같이 한 입으로 친다. 즉 동일한 가치를 갖는 존재로 대한다는 법령이다. 열 사람 몫의 힘이 있는 말이 사람과 같다는 것은 계산이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여기서 '사람'은 무사 이상으로, 바꿔 말하면 병졸, 하인, 농민, 장인, 상인은 물론 아녀자도 포함되지 않는다. (1장 연금 중에서)

말보다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던 시대. 그 어떤 동물보다 인간이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되던 시대가 존재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여성, 아이, 노인, 장애인은 오랫동안 저평가되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흔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온도 님'이란 기타미 번 일대에서 예로부터 신앙해온 토지신님이다. 한자로는 '隠土'님이라고 쓴다. 땅에 숨어 계시니까 농사의 신이고,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며 땅속 깊은 곳에 죽은 자의 영혼이 가는 저승이 있으니 인간의 생사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2장 수인 중에서)

일본인들의 신앙은 여전히 유일신 이전의 시대의 신앙, 특히 애니미즘이 만연하다. 오늘날에도 애니미즘의 종교적 상상력은 흥미롭다.

 

미타마쿠리. "쿠리는 실을 잣는 이토마쿠리의 쿠리와 같은 뜻이지. 자유자재로 다루고, 불러내고, 또 들여보내."(...)

"미타마는 말 그대로 인간의 영혼. 많은 경우 사령이다만 드물게 생령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미타마쿠리는 인간의 영혼을 조종해 그것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이다."(2장 수인 중에서))

영혼이 있다는 상상력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실인 것처럼 통용된다. 그래서 사이비이건 아니건 수많은 종교인들이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아무튼 이 소설 속에서 미타마쿠리는 인간의 영혼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키의 어머니 집안 사람들이 그 기술을 가진 이들로 그려진다. 우리로 치면 무당이 떠오른다. 

 

착란이 진정되면 시게오키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잊어버렸다. 본인이 볼 때는 착란 중의 시간이 뭉텅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자신의 언동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다. (3장 망령 중에서)

소설 속에서 시게오키는 어린 아이, 천박한 여자, 거칠고 상스러운 남자의 3인격을 더한 4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자다. 그러고 보니, MBC에서 방여한 다중인격자를 다룬 드라마의 [킬미힐미(2015)]가 떠오른다. 거친 남자, 뱃사람, 자살충등의 남자 청소년, 연애만 관심있는 여자 청소년 등 7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다중인격자 차도현이란 인물이 나온다. 시게오키와 마찬가지로 차도현도 다른 인격이 나와 활동할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둘의 공통점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인격을 분열시켜 대처한다는 것이다. 

기타미 시게오키는 한 명 뿐이다. 하지만 시게오키의 마음은 여러 사람으로 나뉘어 시게오키가 아닌 척하며 나타난다.(4장 주박 중에서)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절실한 목적이나 필요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나 바뀔 수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로, 어른이 아이로.

"사령의 빙의 따위는 그와 관계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원래 한 사람에게 하나 있는 마음이 여러 개 있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 다른 사람이 몇 명 있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합니다."(시로타 의사의 말, 4장 주박 중에서)

시게오키의 증상을 놓고 과학적으로 파고드는 의사 시로타와 사령이 들린 것이라 믿는 신쿠로 사이의 의견 대립이 흥미롭다. 

 

기타미 시게오키는 고토네라는 남자애, 그리고 아직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여자와 상스러운 남자, 이렇게 세 명의 다른 사람을 만들었다. 외부에서 다른 세 혼이 들어온 것도, 시게오키의 혼이 넷으로 분열한 것도 아니고 본체가 다른 세 사람을 만들어냈다. 시케오키라는 동적인 존재가, 그래야만 한다고 판단한 절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6장 인과 중에서)

 

시게오키가 다중인격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절실한 이유, 그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 '세상의 봄'. 

코로나 19로 인해 외출이 힘든 요즘 같은 시절에도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는 코로나 우울을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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