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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by 산삐아노 2015. 8. 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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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혐오, 귀찮음, 근거 없는 두려움에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한살림 무농약 이상의 야채를 사다 보면,

가끔 벌레들을 만나게 된다.

브로콜리에서도, 옥수수에서도...

 

요즘은 옥수수를 자주 먹으니

옥수수 벌레를 만날 때가 많다.

 

일단 옥수수 벌레는 추방령을 내린다.

아파트 창으로 아래 정원을 향해 벌레를 던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벌레는 가벼우니 중력의 영향을 적게 받을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버린다.

한 마디로 성가셔서 죽이는 것이다.

 

가끔은 창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내가 추방시킨 벌레들의 무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살생을 하나?

나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살생 이상으로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살생을 저지르게 된다.

나방이 될 때까지 키우기도 그렇고.

귀찮은 일이다.

 

개미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일부러 밟고 지나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발꿈치를 들고 살짝살짝 걸어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개미 몇 마리는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자이나교 승려처럼 길을 쓸면서 지나가지 않는 한.

어느 정도를 살생을 피하려 애쓰지만

아주 노력하지는 않는 것이다. 무관심.

 

화초를 키우다 보면

진드기가 너무 많아지면

곤충퇴치를 위한 화학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내 소중한 식물에게 해를 입히는 적들에 대한 분노와 짜증으로.

 

고등학교 때 우리반 아이가 귀뚜라미를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죽이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아이에게 화를 내면서 야단을 했다.

혐오가 벌레를 죽일 이유가 되느냐고?

애를 입히는 것도 아닌데...

 

살다 보니, 그 아이만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이 혐오를 이유로 벌레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나 역시 혐오가 이유가 아니더라도

무수한 자기중심적 이유로 벌레를 죽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후 무수한 살생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면,

적지 않은 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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