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힌 오대산 비로봉을 오른 것은 이번 두 번째.
수년 전,
매서운 추위와 쌓인 눈으로 엄청 고생하면서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 해 겨울에는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비로봉을 지척에 두고 적멸보궁에서 그냥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로봉으로 강행했다면 난
그날 비로봉에서 그대로 얼음기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멸보궁에서 비로봉을 오르는 일은 썩 유쾌하지는 않다.
가파른 계단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까지 와서 얼어붙으면 미끄러워 오르기가 힘들다.
그래도 올해는 수년 전보다 좀 낫다.
눈이 그 만큼 깊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단을 오르다 잠시 쉬면 따사로운 햇살까지 즐길 수 있었다.
그야말로 설산 오르기에는 그저 그만인 운 좋은 날이었다.
비로봉에 올라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봉우리에서는 그래도 겨울 바람이 매서웠다.
주변의 겨울 산이 황량해 보인다.
바람이 너무 차서 사진 찍는 일도 고역이었다.
장갑을 끼지 않고 사진을 찍어 손이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막상 봉우리에 올라 멀리 바라보고 있으면
이대로 계속 산을 걷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끝없이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비로봉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 돌이 보인다.
어찌 사람들이 하나도 없네.
이날도 산악회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무리지어 산을 잘 다니지 않으나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어린시절 소풍이 떠오르곤 한다.
이날도 산악회 사람들은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싸가지고 온 각종 먹거리를 꺼내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도시락도 준비 못한 상태에서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산을 오른지라
그들이 부러웠다.
난 가방 속에 있던 귤 하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곤 바로 체했다.
아마도 겨울바람이 너무 서늘했던 모양이다.
귤이 체한 덕분이었을까?
속이 거의 비었는데도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다음 봉우리 상왕봉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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