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 감독을 주목하지 못한 채 나는 그의 영화(그가 각본을 쓴 영화)를 참으로 많이도 보았다.
가장 최근에 본 <나의 독재자>까지.
사실 <나의 독재자>를 보게 된 것도 순전히 '박해일'이라는 배우 때문이었지 감독을 주목해서는 아니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박해일은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고,
태식(박헤일)의 아버지인 무명배우 성근을 열연해 보인 설경구의 연기는 박해일의 연기 이상으로 돋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엉뚱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가 이해준이었다.
돌이켜 보니 내가 이해준감독의 영화들을 나름 좋아하며 보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바로 <김씨 표류기(2009)>와 <천하장사 마돈나(2006)>.
둘다 너무 재미나게 본 작품들이다.
<나의 독재자> 못지 않게 소재가 독특하다.
히키코모리를 다루는 <김씨 표류기>와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천하장사 마돈나>
이 두편의 영화는 이해준감독이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한 작품이다.
그런데 그는 원래 각본을 주로 쓴 작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안녕 유에프오>는 그가 연출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이다.
둘 다 재미나게 본 기억이 난다.
이해준 시나리오에서 주제의식은 특별히 돋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소재만은 독특하다.
그는 특별한 소재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줄 아는 이야기꾼 같다.
그 이야기가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더라도,
그만의 이야기는 충분히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나의 독재자>에서 김일성 배역에 빠진 성근의 이야기는 어이없을 지경이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해준만의 독특한 이야기세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가 완벽하게 아귀가 맞지 않아도,
남녀간의 사랑이건 부자간의 사랑이건 뻔한 사랑이야기일지라도,
이해준이 앞으로 어떤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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