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음식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수 년전 씨네 코드 선재에서 이이지마 나미 특별전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소개된 일본영화들은 바로 오기가미 나오코의 <안경>, <카모메 식당>, <토일렛>과
오키타 슈이치의 <남극의 쉐프>였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음식이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음식들은 모두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화 안경에는 '팥빙수'가 등장한다.
바닷가 마을 매년 찾아오는 신기한 빙수 아줌마 사쿠라.
이 사쿠라 아줌마의 빙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화려하고 풍성한 설빙과는 다르다.
팥과 얼음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시간, 정성이 가득담긴 특별한 빙수다.
이 빙수 한 그릇이면 우리는 혼돈의 삶을 잠시 떠나서 평화로운 휴식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팥빙수를 매개로 한 삶, 쉼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다.
여름이면 이 영화가 생각나고 팥빙수가 생각나고 영화 속의 바닷가 마을 같이 한가로운 곳에서 설렁설렁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단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한 핀란드 헬싱키가 배경인 영화.
이 영화 속에는 핀란드 헬싱키의 한 지역에 일식당을 내고 차츰 지역주민 속으로 자리잡아 나가는 일본여성이 등장한다.
이 일식당의 '오니기리' 역시 <안경>의 팥빙수처럼 바쁜 일상을 잠시 잊는 잠깐의 여유같은 것이다.
사실 오니기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또에서 먹었던 오메부시가 든 오니기리는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니기리라면 그 오메부시 오니기리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삶의 터전 속에 깊숙이 자리잡아 동네사람들이 오고가며 들러서 쉬었다갈 수 있는 친근한 식당,
카모메 식당같은 공간이 아쉬웠다. 우리 동네에도 카모메 식당같은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그리고 그런 식당에 가면 꼭 먹고 싶은 진짜 음식(좋은 재료를 써서 자연적인 풍미를 살린, 요리사의 정성이 가득 담긴, 몸과 마음에 이롭고 맛도 좋은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이 먹고 싶어 그 식당을 들르는... 얼마나 행복할까?
토일렛에는 어처구니 없는 가족이 등장한다.
소통 없는 삼남매, 말 안 통하는 할머니,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가족의 마음을 열어주는 음식, 교자만두가 나온다.
이 만두는 말도 통하지 않는 할머니와 소통 없는 삼남매가 서로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나는 이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충분히 공감한다.
정성스러운 음식이 사람들간의 마음을 열어주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
남극이라는 혹독한 추위와 부족한 물자 때문에 힘든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멀리 두고 온 가족,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불편함과 외로움을 견뎌내는 사람들에게는
니시무라의 음식이 낙이자 힘이다.
이 영화 속에서 대원들의 야식거리로 등장하는 라면,
그리고 그 라면이 떨어졌을 때 니시무라가 온 힘으로 만들어낸 라면,
라면은 영화의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 일본식 라면은 돼지뼈를 고아서 만든 것이고 만두에는 고기가 들어가서 평소에 먹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각각의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들
(<안경>의 팥빙수, <카모메 식당>의 오니기리, <토이렛>의 만두, <남극의 쉐프>의 라면)을 모두 먹고 싶은 욕구가 불끈 쏟아오른다.
사실 이런 욕구는 영화가 소개한 그 음식들이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 마음을 담은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은 갈망일지도 모른다.
음식을 매개한 위의 네 편의 영화는 모두 또 보고 싶은 따뜻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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