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눈 덮힌 하천가를 걸으며(2021년 1월중순)

나들이예찬/동네나들이

by 산삐아노 2021. 1. 17. 19:54

본문

지난 11월 말 이후 처음 볼일을 볼 겸 하천가길을 걸었다. 올해 들어서는 처음 하천가를 걸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기분이 좋고 상쾌했다. 하천은 여기저기 얼어붙어 있었다. 

내린 눈은 녹지 않았고 지난 12일 오후에는 다시 함박눈이 쏟아졌다. 

하천 안에 눈섬이 생겨났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눈이 쏟아지는 데도 부지런히 깃털을 단장한다.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사람들의 발소리게 귀기울이며 몰려드는 곳에 청둥오리들이 함께 몰려 있었다. 

오리들도 사람이 주는 먹이가 필요한가 보다. 

청둥오리 수컷 한 마리가 우두커니 하천 바위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마른 풀 위에 소담스럽게 쌓인 흰눈이 한겨울 정취를 그대로 전해준다.

마른 풀들이 아직 쓰러지지 못하고 우두커니 죽은 채 서 있다. 

코로나19의 기세 때문에 지난 12월에는 단 한 번도 하천가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실 치과가 아니었다면 1월에도 하천가를 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 덕분에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억누르고 겨울 하천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다행이다. 

올겨울은 지난 겨울에 비해 정말 추웠다. 

낮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으니까. 

그사이 날씨가 좀 풀려서 하천 위의 꽁꽁 언 얼음도 좀 녹았지싶다. 

치과를 가는 길에는 흙길 위에 눈이 얼어붙어 있어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는 눈이 제법 치워져 있었다. 덕분에 쉽게 걸을 수 있었다. 

눈 위에 큰여뀌가 말라 있다.

집오리들이 지내던 곳도 마른 풀이 무리지어 있고 흰눈이 쌓여 있다. 

사람들이 눈 길을 위를 걸어 녹았다 얼어붙었다 하느라 길이 미끄러웠다. 

죽은 집오리들이 머물며 지내던 그곳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집오리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흰눈이 새하얗게 덮혀있다.

오리들 생각에 조금 슬펐다. 

바로 이런 복장을 한 아저씨들이 눈을 치우고 계셨다.

덕분에 걷기가 수월하다며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부끄럼 때문에 또 코로나 때문에 입을 닫은 채 그냥 스쳐 지나갔다. 

한 할아버지가 "수고 많으시다"며 인사를 건네고 지나가신다. 

잎을 잃은 뽕나무, 물억새 무리가 멋지다. 

슾지 주변도 눈에 쌓여 언제 꽃밭이었는지 기억을 해낼 수 없는 지경이다. 

멀리, 지난 가을에 짓던 아파트가 벌써 새하얗게 단장되어 거의 마무리가 되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동안에도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누군가 부지런히 일을 했다는 것. 

눈 덮힌 습지 주변에 잎을 잃은 앙상한 버드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가을에는 미나리가 자라고 있었다는 생각이 나서 헛되이 미나리를 한 번 찾아보았다. 있을 리가 없지...

까악까악하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 보았더니 역시나 까마귀 한 마리가 있었다. 

왜 하천에 들어갔지? 이 추운 날? 

거의 항상 이 설치예술품 근처를 지날 때면 가마우지가 있나 살펴보는데, 거의 어김없이 가마우지를 찾을 수 있다. 

이 날도 그랬다. 제일 높은 곳에 가마우지가 앉아 있었다. 반가웠다.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 또 한 마리는 어디 있나?

달뿌리풀무리가 짙은 갈색으로 무리지어 말라 있다. 죽어 서 있는 모습도 아름답네.

또 다른 집오리들이 살았던 곳에 가까이 왔다. 

눈을 이고 있는 밥돌을 잠시 살펴보았다. 

오리들의 밥돌이 경계석이 되었을 때 오리들의 운명을 예감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하천이 꽁꽁 얼어붙었다. 누군가는 얼어붙은 하천 위에 내린 눈 위를 걸었나 보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다. 

치과를 갈 때는 이 경사질을 내려올 때 미끄러워서 힘들었다. 혹시나 넘어질까 엉금엉금 걸었다.

그래도 올라가는 길은 쉬웠다.  

동네 중국단풍 가로수 길 아래 사람들이 걸어간다. 다들 검은 옷차림이다. 

길 위의 눈이 치워지지 않았다. 

이틀 후 다시 하천에 나갔다. 햇살이 좋아서. 

함박눈이 이틀 전 펑펑 내렸지만 많이 녹은 것 같다. 

눈 내린 다음 기온이 봄날씨처럼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녹은 눈이 다시 얼어붙어 길은 훨씬 더 미끄러웠다. 

그래도 햇살의 느낌은 금방 봄이 다가올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겨울 하천가를 걸었더니 어느새 코로나 우울이 떠나다.

햇살 아래 하천가를 산책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나아지다니!

바이러스는 도대체 언제 우리를 떠나갈까?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