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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 윤회를 이용해 미성년자와의 동성애를 그리다

볼영화는많다/상상의힘

by 산삐아노 2021. 1. 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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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승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인 [번지점프를 하다(2000)]가 상영될 당시에는 한국에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뒤늦게 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한 번도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었나 보다. 아마도 수 없이 소개된 이 영화를 본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기억의 왜곡. 

아무튼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이은주. 이은주는 내가 좋아하던 여배우였다. 

그녀가 2005년 2월, 자살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 너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주홍글씨(2004)] [안녕! 유에프오(2004)] [연애소설(2002)][오! 수정(2000)]에 출연했던 이은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남자 주인공역은 이병헌이 맡았다. 

이병헌, 정말 젊고 아직은 순진한 느낌이 나는 얼굴이다. 이번에 든 생각인데 이병헌은 '나훈아'과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헌의 친구로 이범수도 나온다. 반갑다. 

서인우와 인태희의 대학시절은 90년대 초반. 90년대의 옷차림이나 분위기가 흥미롭다. 

요즘 옛날 영화를 보면서 그 시절의 풍경, 옷차림, 물건 등을 살펴보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등산을 간 장면에서 이은주가 신고 있는 긴 등산양말! 우리 아버지의 등산양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요즘 이렇게 바지 위에 등산양말을 신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로맨스물인 이 영화는 서인우와 인태희라는 남녀의 열렬한 로맨스를 다룬다. 

여자가 죽어서도 환생해 사랑했던 남자를 다시 알아보고 남자 역시 환생한 죽은 여자를 알아보고 사랑한다는 설정이니까 도대체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인지!

그런데 인태희는 남자로 환생했다. 전생에서는 여자로, 후생에서는 남자로 태어난 것이다. 

이 지점에서 판타지가 시작된다. 환생이라는 설정 자체가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끌고 간다. 

환생을 하면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고... 하지만 그 개별적 영혼은 그대로 윤회를 한다는 상상. 

남자가 되건 여자가 되건 그 속의 영혼은 같다는 것. 

교통사고로 죽은 인태희는 서인우가 고등학교 국어선생이 되어 담임을 맡은 고등학교 2학년 반의 한 남학생으로 환생한 것이다. 

임현빈이라는 한 여학생에 꽂혀 뒤따라다니는 덩치좋고 키 큰 남학생이 인태희의 환생. 

여기서 바로 남녀 로맨스가 남성간의 동성애로 바뀐다.  

 

이 영화가 나올 당시만 해도 노골적으로 진지하게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판타지를 빌어 동성애를 다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다수 대중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욕망을 판타지로 바뀌어 그리는 것, 흔하다.

요즘 판타지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중년여성과 미성년 남학생 간의 사랑인 듯한데...

중년남자가 미성년 남자애가 된다거나 중년남자의 영혼이 미성년 남자애의 몸에 들어간다거나...

여성들이 자신보다 어린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그 어린 남자가 미성년자라는 위험한 욕망. 

이 사회 속에서 판타지가 아니라면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욕망이다. 

2000년 당시에는 남성 동성애가 노골적으로 그리기 힘든 욕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에 대한 위험한 욕망이라서 윤회라는 장치를 빌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 그리고 이 영화 속에 자살한 또 다른 여배우가 나온다. 전미선 배우. 

전미선은 지난 2019년 6월에 자살했다. 연기력이 출중한 이 여배우가 왜 자살했을까?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서인우는 자신은 인태희를 사랑할 뿐이지만 학교에서 동성애 교사로 내몰리고 결국 학교를 그만둔다. 

영화는 계속해서 서인우는 이성애자임을 강조한다. 정신병원에 가서 검사도 하고. 

서인우는 절대로 동성애자가 아니고 이성애자라는 것. 인태희를 너무 사랑해서 인태희가 다시 태어났기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런데 윤회한 인태희가 남자 청소년일뿐, 마침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반의 남학생일 뿐. 

관객들이 서인우와 임현빈의 사랑을, 남자 선생과 미성년인 남학생 간의 동성애라는 다수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험한 사랑을 모른 척 보아줄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느라 애쓴 티가 역력히 난다.  남녀 성인들간의 이성애로 포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인우와 인태희의 로맨스와 인태희의 죽음, 그리고 인태희 영혼의 윤회가 필요했을 것이다. 

동성애도 수용하기 어려운데, 게다가 선생이 자기 동성제자를 사랑한다는 설정을 비난받지 않고 그리기 위한 영리한 전략이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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