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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 모킹제이] 반군의 상징인 모킹제이로 거듭나는 소녀 전사

볼영화는많다/원작

by 산삐아노 2020. 12. 2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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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모킹제이(2014)]는 '헝거게임' 영화시리즈 3번째편이다. 

헝거게임 시리즈는 원래 소설이 원작이다.

미국소설가 수잔 콜린스가 지은 '헝거게임 시리즈'는 총 3권으로 [헝거게임] [캐칭파이어] [모킹제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영화는 총 4부작.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20120], [헝거게임:캐칭파이어(2013)], [헝거게임:모킹제이], [헝거게임: 파이널(2015)].

소설을 읽어보지 못해서 모르겠는데, 짐작으로 [헝거게임: 모킹제이]는 소설 3권의 1부, [헝거게임:파이널]은 2부로 보인다.

처음 영화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을 보았을 때, 내 인상은 게임처럼 여겨졌다.

북미대륙의 독재국가 '판엠'이 있고, 수도와 주변부 13개의 식민지역이 있다. 

13개 지역에서는 반란을 도모하지만 13구역은 박살나고, 나머지 12구역의 반란을 억누르기 위해 '헝거게임'을 벌인다.

각 구역에서 12-18세 남녀 각각 1인씩을 추첨해서 '헝거게임'을 한다.

추첨은 12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낸다. 이때 이름을 한 번 더 적어넣으면 1년치 곡물과 기름을 받을 수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식량을 더 받기 위해 자기 이름을 여러번 적어낸다. 따라서 헝거게임에 차출될 확률도 높아진다. 

헝거게임에 뽑힌 24명의 청소년들은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을 벌이게 된다. 

마치 로마의 검투사시합이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가 역시 로마 검투사 시합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영화는 무척 우울하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아이들이 살인게임을 무릅쓰고, 또 살인게임에 참여해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다는 이야기가 소름끼친다. 게다가 독재자와 그 작당들이 수도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공포정치를 하고 나머지 주변지역은 빈곤에 신음한다고 하니 얼마나 비극적인가.

소설가는 헝거게임 시리즈 소설을 쓰면서 수도와 주변부의 미디어 정치전을 통해서 미디어가 사람들을 세뇌하고 좌지우지하는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려 했다고 한다. 

정부군도 반군도 모두 미디어를 통해서 사람들을 통제한다. 

1편을 보고 이번에 3편을 보다 보니, 1편에 비해서 3편은 너무 단순한 스토리 전개에 식상한 감이 있다. 

반군이 '캣니스'라는 소녀를 '모킹제이'로 상징화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모킹제이'는 캐피톨에서 유전자 조작해서 만든 새 '재잘어치'와 자연의 새인 '흉내지빠귀' 사이에서 태어난 새이다.

원래 캐피톨은 살아 있는 녹음기인 '재잘어치'를 만들어 적을 염탐하는 데 이용하려 했으나 반군이 재잘어치를 역이용해서 반군이 캐피톨을 농락하자 캐피톨이 이 새를 자연 속으로 풀어서 죽도록 방치한다. 하지만 수컷만 존재하는 재잘어치는 자연생태계에서 살아남아 흉내지빠귀와 '모킹제이'라는 새로운 새를 생산한다. 그래서 이 모킹제이를 반군은 반군의 상징으로 삼는다. 

독재자 스노우는 모킹제이에 동조하는 이를 가차없이 학살한다. 

보다 보니 복수전이구나, 싶었다. 

독재작의 공포조성과 살인행각에 대해서 복수를 하고자 하는 반군들. 

당하면 복수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복수전을 다룬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다.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은 영화였지만, 주인공 캣니스 역을 한 배우 제니퍼 로렌스 때문에 보게 되었다. 

제니퍼 로렌스가 내가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과 너무 닮았다 싶었다.

또 뛰어난 체력를 지닌 강한 여성인 캣니스처럼 그 사람도 철인3종경기가 취미다. 

그림 속에서 가까운 사람을 보는 태도를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 속 배우들 모습을 통해서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과 외모를 발견하게 된다.  

[헝거게임:모킹제이]를 다음 편 [헝거게임: 파이널]과 이어져 있다. 그래서 끝이 허탈하다. 계속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헝거게임:모킹제이]와 [헝거게임:파이널]을 이어서 보는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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