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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복서] 비극적인 복서의 해피엔딩(?)을 다룬 블랙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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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삐아노 2020. 9. 1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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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복서(2018)]라니? 제목이 신기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판소리'와 '복서'의 결합.

영화 감독을 찾아보니 정혁기 감독.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역시나 젊은 감독이다. 

상상력이 넘치는 젊은 감독의 작품, 앞으로도 그의 작품이 기대된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복서 병구가 권투도장의 전단지를 붙이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오랜 세월을 견뎌왔을 것 같은 다소 허름한 집들이 등장한다. 알고 보니 재개발지역이다. 동네의 풍경이 정감 있고 좋았다. 

박관장이 운영하는 권투 도장은 거의 나오는 사람이 없다. 동네만큼이나 쇠락해가는 곳이다. 

주인공 병구는 도핑 때문에 권투인생이 망가졌다.

게다가 병구는 펀치드렁크(punch-drunck)다. '펀치드렁크'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찾아보니 권투선수처럼 뇌에 많은 손상을 입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증이라고 한다. 

혼수상태, 정신불안, 기억상실의 급성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치매, 실어증, 반신불수, 실인증의 만성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주인공 병구는 뇌손상이 심각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병구가 도장 허드레일을 하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박관장은 어쩌면 병구의 처지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동네도 도장도 박관장의 삶도 병구의 삶도 모두 쇠락해가는 듯하다. 박관장을 자신을 '삼류'라고 지칭한다. 

이토록 우울한 상황임에도 영화는 코미디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병구가 동네에 붙인 전단지 효과로 찾아온 새로운 손님은 민지. 

민지는 병구를 코치님이라고 부르면서 잘 따른다. 

사실 젊었을 때 병구의 꿈은 판소리 복서로 유명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핑이 문제되서 복싱계에서 제명되면서 안타깝게도 그 길이 막혔다. 

병구는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견디면서 지낸다. 

배우 엄태구는 사실 비극적 인물이지만 코믹하게 풀어낸 병구란 이름을 정말 잘 소화낸 것 같다. , 

병구는 우연히 동네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운다.  

병구의 일상에 민지와 유기견이 들어오면서 병구의 우울한 일상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 것 같다. 

병구가 판소리 복서를 꿈꾸게 된 것은 오래전에 좋아했던 친구 지연 덕분이다. 

지연이 장구를 치면 병구는 그 장단에 맞춰 복싱을 했던 것.

하지만 지연은 더는 곁에 없다. 

지연의 자리에 민지가 나타나 장구를 치면서 병구의 복싱을 독려한다. 

병구는 죽기 전 하고 싶은 일, 판소리 복서가 되기로 결심하고 맹연습에 돌입한다. 

그런데 아끼던 유기견은 세 마리의 강아지를 남기고 이 세상을 먼저 떠나가고...

수의사는 이 세 마리 강아지도 살아남기 쉽지 않으리라고 암울한 이야기를 전한다. 

박관장은 병구가 펀치드렁크로 인해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채고 병구가 다시 복싱선수로 뛸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병구에게 링에서의 재기는 너무 늦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운 되기 직전 민지의 장구 소리가 병구의 마지막 에너지를 폭발시키게 만들고 병구는 판소리 복서로서 유감없는 실력을 보이다가 쓰러지고 만다. 병구의 마지막 판소리 복서로서의 활기넘치는 모습은 마치 백조의 마지막 울음같은 느낌이다. 

병구가 쓰러져 의식을 잃고 암전. 

암전 후 이어진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병구가 죽기 직전 꾸었던 꿈이 아니었을까?

병구의 판소리복서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도장에는 판소리 복싱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밀려들고 

유기견이 남긴 세 마리 강아지도 제법 건강하게 자랐다. 

이 강아지들과 민지와 병구는 행복한 산책에 나선다. 

그야말로 병구가 민지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하지만 병구가 살아낼 수 없었던 그 삶. 

그럼에도 영화는 마치 해피엔딩처럼 끝맺었다. 

사실 후회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생을 마감했다면 그 역시도 해피엔딩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비극이지만 코미디로 풀고 해피엔딩인 듯 처리한 감독의 선택이 멋지다.

게다가 판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해서 특색있고 코미디를 더 재미나게 만들어주었다.

쇠락해가는 것들을 따뜻하게 표현한 영상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마음에 든다.

 

 

박관장: 병구야, 시대가 변했다. 우리 시대가 다 지난 것 같다.

병구: 그런데 관장님, 다 끝난 것처럼 말씀하세요?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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