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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속 거미

사노라면

by 산삐아노 2019. 6. 2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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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내 공간 속으로 불쑥 뛰어드는 존재를 때로는 내치고 싶지 않다.


퇴비가 잘 썩도록 수시로 거름통에 물을 주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거름통에 물을 주려고 하는데, 검은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을 언뜻 보았다. 

그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베란다 코너에 거미줄이 잔뜩 뒤엉켜 있었다. 

검은 생명체는 다름 아닌 거미였다.

이 거미는 멋지고 아름다운 거미줄을 만들지 못하고 흉가나 폐가에나 있음직한 회색 실뭉치의 거미줄을 쳐두었다. 

코너의 폐인트도 벗겨진 상태고, 차 찌꺼기와 흙 덩어리가 주변에 떨어져 있어 그야말로 흉가의 모습을 닮았다.

거미는 제법 열심히 일을 했던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미줄이 없었는데...

거미줄에는 요즘 퇴비통에서 날아오르는 초파리가 잔뜩 붙어 있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초파리 수가 줄어든 걸까?

아니면 더워서 줄어든 것일 수도 있겠고...


여하간 거미는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내 공간에 집을 지었다.

나는 거미를 내쫓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겨울 되면 살기도 어려울테니...

다만 거미에게 "월세를 내!"하고 요구했다. 

마음대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은 허락해 줄테니 월세라도 내야하지 않겠나 하는 내 의견을 말했다. 

거미는 대꾸도 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 번 더 "월세를 안 내면 강제철거야!"하고 협박도 해보았다. 

거미는 내 협박 따위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아니 거미줄 속에 웅크린 채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없는 척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거미에게 제법 집주인, 땅주인 행세를 흉내내 보았지만 거미에게 월세를 받기 어려우니 날파리나 잘 잡아주길 마음 속으로 부탁했다.  

우리집에 또 한 생명체가 공존하게 된 것이 내심 기쁘다. 

거미줄이 좀더 멋졌더라면 훨씬 더 기뻤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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