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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눈의 아이] , 내면, 소문, 가상세계 속의 감춰진 것 드러내기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9. 4. 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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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단편모음집인 [눈의 아이]는 일본에서 2011년 광문사 문고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북스피어에서 번역출간되었다. 

이 단편집은 우리말 번역본에서 제목이 바뀌었다. 

원래는 [지요코]다. 

일본에서는 '지요코'를 내세운 반면, 한국에서는 '눈의 아이'를 내세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았던 작품도 '지요코'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지요코'라는 일본이름보다는 '눈의 아이'가 한국독자에게 더 나은 제목으로 다가갈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어쨌거나 이 단편모음집은 30대초반에 출간된 단편집들의 작품과는 차이가 난다. 

훨씬 상상력이 돋보이고 은밀히 감춰진 것을 표현하려 했다고 할까.


이 책에는 모두 5편의 단편, '눈의 아이', '장난감', '지요코', '돌베게', '성흔'이 실려 있다.

'눈의 아이'는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있는데, '나'는 어린 시절 친구를 살해하고 그 사실을 20년이 지난 현재도 숨긴 채 살아간다.

'장난감'은 생가와 의절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히 의절한 친척이 근처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서로 왕래도 하지 않고, 결국 친척은 죽음을 맞지만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의절당한 사람과 관련한 나쁜 소문의 진상을 풀어낸다. 

'지요코'는 낡은 핑크색 토끼탈과 관련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탈만 쓰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곰인형, 로봇 등으로 보이는 것이다. 

바로 그 사람들이 아꼈던 추억의 인형들, 장난감들이다.

그런데 검은 손을 등에 진 사람들이 있다. 왜 일까?


"나는 생각해 보았다. 엄마와 아들의 등에 달라붙어 있던 기분나쁜 검은 손, 세상에 떠돌고 있는 나쁜 손에 대해서, 

누구든 그 손에 붙잡힐 위험이 있다. 그 손에 붙잡히면 나쁜 짓을 하게 된다. 물건을 훔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않는 건, 몸에 두르고 있는 인형과 장난감이 지켜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를 소중히 여겼던 추억, 무언가를 좋아했던 추억.

사람들은 그런 기억들에 의해 지켜지면 살아간다. 그런 기억이 없는 사람은 서글프리만큼 간단하게 검은 손을 등에 짊어지게 된다."

('지요코' 중에서)


저자의 생각이 무척 흥미롭다. 

어렸을 때 인형이나 장난감을 아꼈던 소중한 추억이 우리를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생각.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 인형들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가장 아꼈던 인형은 타올로 만든 하늘색 사자인형이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그 인형을 잊었었다.


소설 속 나는 '지요코'란 이름의 인형이 바로 그 소중한 추억의 인형이었다.

그 인형은 부모님 창고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내 인형은 완전히 잊혀지고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사진 한 장 없다니... 내 기억 속에는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 괜찮다.


'돌베게'는 유령소동의 진상을 풀어간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는 '돌베게'라는 인과응보 구전이야기가 나온다.

산속에서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는 잠든 나그네를 죽이는 부부가 결국 자신의 딸까지 죽이게 되는 이야기다.

돌베게는 바로 나그네가 베고 자는 베게다. 

돌베게를 베고 자는 나그네에게 망치를 휘둘러죽이는 부부를 막기 위해 딸이 나그네와 침상을 바꿔 돌베게를 베고 자다 부모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바깥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자기 마음의 광경을 보고 있다."

('돌배게' 중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이야기는 틀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의 고통의 많은 부분이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겠지.

하지만 전적으로 내 몫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내 마음은 밖에서 또 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성흔'은 읽다 보니 최근에 번역출간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비극의 문]이 떠올랐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어쨌거나 소설은 인터넷 공간에서 말로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고 거짓을 믿게 만드는 힘을 담았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남자를 죽인 어린 소년은 어느덧 검은 메시아가 되고, 

검은 메시아를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철퇴의 유다'는 신과 접촉해 얻은 손바닥의 핏빛 멍을 성흔이라 믿는다.


나는 이 단편소설들을 하나하나 자기 직전에 읽어갔다. 

잠들기 직전 미야베 미유키의 재미난 소설을 읽는 일이 최근에는 일상적 리듬이 되었다. 

당분간은 이 리듬을 계속 이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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