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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피리술사]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3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7. 12. 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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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소설 가운데 번역되지 않은 다섯권을 제외하고 이 [피리술사(2013)]를 마지막으로 모두 읽었다.

현재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소설로 번역된 책은 모두 21권이다. 

이 책들을 읽는 데 나는 지난 10월, 11월, 즉 2달을 바쳤다. 

홀린 듯 읽었다고나 할까. 정말 재미난 소설책이었다. 

평소 소설책을 즐겨 읽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재미있지 않아서였나 보다.


아무튼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소설은 

오하쓰 시리즈([흔들리는 바위]와 [미인]), 얼간이 시리즈([얼간이], [하루살이], [진상]), 미시마야변조괴담시리즈([흑백], [안주], [피리술사])

이외에도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중단편,  장편의 여러 권의 책들이 있다. 

정말 대단한 필력이다.


2.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 3번째 책인 [피리술사]는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다마토리 연못', '기치장치 저택', '우는 아기', '가랑눈 날리는 날의 괴담 모임', '피리술사', '절기 얼굴'.


이 미시마야 변조괴담은 

미시마야 흑백의 방에 와서 누군가 괴담을 들려주고 그 괴담을 미시마야 주인의 조카딸인 오치카가 듣는 식으로 펼쳐진다.

괴담을 들려주고 버리고 괴담을 듣고 버리는 것. 그러면서 서로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오치카는 차분하게 가슴속에 괴담을 담아 나갔다. 

괴이한 일을 말하는 것은 세상의 어둠을 말하는 것이다.

괴이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이야기를 통하여 이 세상의 어둠을 접하는 것이다.

어둠속에 무엇이 숨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음까지 함게 귀로 듣고 가슴에 담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청자노릇을 감당할 수 없다.

화자는 말하고 버리고 청자는 듣고 버린다.

이 규칙을 액면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 때까지 오치카는 청자로서 수련을 쌓아나갈 작정이다."('다마토리 연못' 중에서)


3. '다마토리 연못' 이야기는  사람하는 남녀의 변심과 관련된다.

 시샘이 많은 암멧돼지신은 사랑하는 남녀, 약혼한 남녀, 부부를 싫어해서 불화를 만들어주는 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연못에 가까이 간 이런 남녀들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고.

화자의 할머니도 연못에 간 탓에 약혼자가 다른 여자와 달아났다고 한다.

 

"그 신은 여자-그러니까 암 멧돼지인데, 아주 오래 전에 남편이 사냥꾼 총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노와 원한 탓에 그냥 멧돼지가 아니라 원령 같은 것으로 변해서 그 지역에 재앙을 내리게 되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덕이 높은 스님의 훈계를 듣고 참회하여 

앞으로는 이 고장 사람들을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고 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4. '기치장치 저택('기계장치 저택'을 아이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기치장치 저택'이 됨)'은 예지몽을 꾸게 하는 집 이야기라나 할까.

갑작스런 재난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열살난 꼬마가 꿈을 꾸고 재난으로 행방불명된 친구들의 시신을 찾는다. 

화자는 죽음에서 겨우 살아난 노인으로 바로 어린 시절 이 경험을 직접 한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읽는 데, 세월호 생각이 났다.

세월호 유가족 가운데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갈 듯하다.

그리고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아내에게 수도 없이 옛날 일들을 들려주었으면서도 조지로가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이것이었다.

혼자만 살아남고 말았다. 왜 나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혼자만 살아남은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5. '우는 아기'는 타인의 잘못을 꿰뚫어보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담았다.

50대 중반의 은퇴한 관리인이 자신의 경험을,  

딸의 두 건의 살인사건, 자신의 손자 살해에 대해 들려준다.


메모. 관리인: "'이에모리', '오야', 혹은 '관리인'이란 지주에게 고용되어 토지나 셋집을 실제로 관리하고 집세를 거두는 일부터

 세입자들 간의 분쟁을 중재하는 일까지 온갖 잡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에도 시중에서는 버려진 아기나 미아를 처리하는 것도 조야쿠닌의 소임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면 관리인은 바쁘게 이리저리 알아본다.

대개는 양부모를 찾아서 맡기지만, 

좋은 양부모가 나타나지 않으면 절에 맡기기도 하고 관리인이 직접 키울 때도 있다고 한다."


메모. 쥐고사: 괴담을 말하고 듣는 흑백의 방이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

이 집안의 명물로 변조괴담 이외에 쥐고사의 찍찍, 찍찍, 쥐 울음소리 흉내내기가 있다고.

미시마야에서는  쥐의 달인 동짓달, 첫 자일(쥐 날)에 쥐고사를 드린다.  

상가에서는 사업번영을 기원하는 행사라고. 

대흑천께 고사를 드리고 쥐가 좋아하는 콩이나 팥밥을 공양하며 다함께 염원한다.

"흰 쥐는 대흑천의 사자인 데다 쌀 창고를 거처로 삼으니 굶주릴 일이 없다는 신통한 생물이야.

정성스럽게 흉내내지 않으면 대흑천의 가호를 못 받고 말아."


5.  '가랑눈 날리는 날의 괴담모임'에서는 오치카가 흑백의 방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괴담을 듣는다. 

이 모임에서 네 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첫번째 이야기는 증축된 집에 나타나는 기이한 공간에 얽힌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는 나무다리에서 통하는 낯선 공간으로의 이동과 관련한 이야기,

세번째 이야기는 사람들의 병을 알아보는 특별한 눈을 가진 어머니 이야기,

네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나쁜 짓을 하던 오캇피키의 최후를 지켜본 또 다른 오캇피키의 이야기.


메모. 오캇피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오캇피키라는 자들은 어깨를 펴고 하늘 아래를 걸어 다닐만한 처지가 아닙니다.

범죄로 몸을 더럽힌 자들이, 뱀의 길은 뱀이 안다고 악당들의 소식에 정통해 체포를 도운 데서 시작된 직책이기 때문에,

짓테를 받으면 그 권세를 믿고 공갈과 협박을 일삼는 자도 있습니다."


오치카가 괴담모임을 오고가면서 건넌 다리에서 만난 '뜻밖의 존재',

알고 보니 그 존재는 미시마야에 겨울동안 일하러 온 모녀를 지켜주는 돌부처였다.

 

"아기씨, 다리란, 본래 길이 없는 곳에 걸쳐 놓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사다리나 계단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러니까 뜻밖의 존재를 불러들이거나 이승이 아닌 장소로 통해 버리는 일도 일어나는 것이지요.

저도 이 모임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입니다만."


길을 이어주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뜻밖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왔다.


6. '피리술사'는 괴수에 대한 이야기로 피리술사인 여인이 괴수를 물리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괴수전'이 생각났다. 

'피리술사'가 '괴수전'에 앞서 지어진 이야기이니, 어떤 의미에서 단초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피리술사'의 괴수와 '괴수전'의 괴수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원한이 괴수를 만든다는 것과

인간이 산, 자연을 해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

여러 동물들이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고 거대하다는 것.


"꼬리다. 긴 꼬리가 달려 있다.

짤막한 뱀 같은 몸에 두꺼비 같은 배. 네 다리와 꼬리는 도마뱀을 닮았다. 

다만 도마뱀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하다."

"-저 앞다리.

사람의 손을 닮았지만 훨씬 흉하게 생겼고, 손끝에 해당하는 부분이 깊이 패어 있었던 그 발자국.

그것과 일치하는 형태였다. 땅이 깊이 패인 까닭은, 이 높이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굵고 날카로운 발톱 때문이었다."

"낫이나 도끼로는 도저히 마구루와 맞설 수 없었다. 

그 썩은 듯한 풀빛 피부는 도마뱀이나 개구리의 것과 닮았지만 마구루에게는 단단한 비늘이 있었다.

사람이 휘두를 만한 크기의 날붙이라면, 있는 힘껏 던지거나 내리찍어도 튕겨나가고 말 것이다."

"마구루는 원래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괴물이지만...... 특히 여자와 아이의 부드러운 고기를 좋아해서 냄새로 찾아냅니다."

"마구루는 이 지방의 생물이다. 

아마기무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각 산이 셋 내지 다섯개쯤을 자리잡고 있는 범위 내에서 수 십년에 한 번이라는 매우 드문 비율로 나타난다.

반드시 여름에 나타나며, 마구루가 나타나는 여름은 대단히 덥다."

""마구루는 어떤 원한이 실체를 띠고 나타난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 그 지방의 산들이 활발하게 개척되기 전에,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냥과 숯 굽기로 간신히 살아나가던 시절에, 

영주에게 가혹하게 착취당하고 전쟁터에 끌려 나가고 비참하게 굶어 죽어간 산골 주민들의 원한이 깊었는데, 

그것이 마구루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리술사에 의해서 이 괴수를 퇴치하는 법이 끔찍하다.

스스로를 먹도록 유인하는 것!


7. '절기얼굴'은 절기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사람의 이야기다.

자살시도자에게 죽기 전 한번 더 주어진 삶의 기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이야기의 상상력이 특별히 재미났다.


8. 메모. 

괴담모임: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각자 돌아가며 괴담을 하되, 백 가지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한다는 제대로 된 괴담 모임이었다.

그런 자리에서는 초 백 자루를 켜 놓은 뒤 이야기 하나가 끝나면 촛불 하나를 끈다. 

그렇게 백 가지 이야기가 끝나 방 안이 깜깜해지면 뭔가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기치장치 저택' 중에서)

괴담의 종류라면... 마귀, 요괴, 원령이 등장한다

가미카쿠시(신의 영역으로의 의한 갑작스런 행방불명), 우세모노(물건이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다른 곳에 옮겨지는 현상), 

오래된 물건(오래된 그릇, 악기, 족자 등)에 얽힌 이야기, 산이나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귀신나오는 집...


"괴이한 일을 이야기하거나 들으면 일상생활에서는 움직일 일이 없는 마음속 깊은 곳이 소리도 없이 움직이다.

무엇인가가 웅성거린다. 그 때문에 무거운 생각에 짓눌릴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득 정화된 듯한, 혹은 각성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랑눈 날리는 날의 괴담모임' 중에서)


괴담을 읽으면서 대학생 시절 때 친구들과 둘러 앉아 돌아가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나서 잠깐 빙그레 웃었다. 

그 이야기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한 친구가 화장실 문을 열기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화장실문을 열면 그 공간이 완전히 달라져 평소의 화장실과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뀐다는 상상.

그래서일까. 나는 평소 화장실 문을 닫아두지 않는다. 항상 열어두면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뚜껑이 덮혀 있는 변기에 대한 공포도 있어 변기뚜껑을 덮지 않는다. 

역시 덮어두지 않으면 뚜껑을 들었을 때 그 속에 사람 머리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이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소설이 더 번역되어 나오기 전까지 다른 괴담집이나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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