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미야베 미유키의 [괴수전], 괴물에 대한 돋보이는 상상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7. 11. 24. 18:47

본문

1.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소설 읽기도 서서히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이번에 읽은 [괴수전(2014)]은 미야베 미유기의 기존 에도시대소설과는 좀 차이가 난다. 

그 소재가 괴물이라는 점에 있다. 괴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괴수가 나오는 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책은 무척 흥미롭다.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잔혹한 장면이 많아서 그리 인기가 없을 수도...


2. 이 소설책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무엇보다 '괴수'다.

괴수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하고.


처음에 등장인물들은 이 괴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괴수를 목격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 존재의 형태와 위험성을 자각하게 된다.


"커다란 도마뱀 같기도 하고 뱀 같기도 하고 두꺼비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곰처럼 짖는..."(혼조무라의 긴지로의 증언, '항마' 중에서) 


"골이 띵할 만큼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미노키치는 내장이 온통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이 냄새, 기억난다.

괴물이 조금 움직였다. 작은 동산 같은 몸뚱이를 지탱하는 굵고 짧막한 다리가 보였다. 다리만 보면 도마뱀을 꼭 닮았다.

며느리 발톱이 뒤꿈치에 달려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향한 발톱 세 개는 놀랄 만큼 크고 날카로워, 발톱이라기 보다는 엄니 같았다. 

몸은 두꺼비, 다리는 도마뱀, 꼬리는 뱀, 피부에는 얼룩무늬가 있다. (나가쓰토 변경 요새 근처에서, '습격' 중에서)


"무엇을 근거로 뒤를 돌아보았다고 생각했을까. 입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물고 있다. 

가로 길이가 족히 한 길은 될 것이다. 도마뱀의 아가리, 두꺼비의 아가리, 그 위에 있는 것은 아마도 콧구멍일 테다. 

얇고 일그러진 혹 같은 돌기에 구멍 한 쌍이 뚫려 있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얼굴'이라고 판단하기에는 결정적으로 모자란 것이 있었다.

눈이다. 이 괴물에는 안구가 없다. 눈두덩도 없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따위가 아니다. 아예 눈이 없었다. 

'이건 짐승이 아니야.'

아카네는 꼼짝도 못한 채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뭔가의 화신이다. 부정이나 재앙, 혹은 악의가 덩어리를 이룬 것이다.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끔찍한 존재란 말인가.'

너에게 이름은 있니? 다른 생물과 같이 '생명'이 있나?

목소리로 나오지 못한, 마음으로 외치는 물음에 대답하려는 듯 괴물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붉은 아가리 속에 박힌 날카로운 이빨들이 나란히 드러났다. 

붉은 살코기 빛깔의 무서운 혀 덩어리도 보인다."('습격' 중에서)


괴수는 보통의 생물과 다르다는 것, 나쁜 것의 덩어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눈이 없어도 얼마든지 공격하고 변신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임을 알게 된다. 


"나오야는 처음으로 괴물을 보았다. 뱀 같은 비늘, 두꺼비 같은 배, 커다란 아가리, 독립된 생물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공격하는 긴 혀와 꼬리. 

괴물은 요새 외벽을 기어올라 벽 일부를 뜯어내며 땅바닥으로 추락하더니 멀쩡하게 일어나 꼬리를 쳐들었다. 그러고는 목을 올리며 포효했다. 

그 강력하고 빠른 동작에는 시선을 빼앗으며 매혹하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조재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피부 빛깔을 수시로 바꾸어 모습을 감출 수  있다는 점이 두렵다. 

덩치가 저만한 짐슴이 감쪽같이 시야에서 사라지다니."('사투' 중에서)


알고 보니, 괴수는 쓰치미카도 님, 즉 도마뱀, 두꺼비와 같은 생명을 기반으로 해서 흙인형에 저주의 주술을 건 것이었다. 

무사들의 피도 바치고. 


"생물을 기반으로, 거기에 흙덩이나 진흙을 이겨 붙인 뒤 악의와 독기를 봉해서 그 추한 꼴을 빚어낸다. 

괴물의 잘린 혀가 순식간에 뭉그러져 버린 것도, 거기에 임시 생명을 주던 '기반' 생물에서 분리된 탓이 틀림없다고 겐이치는 주저 없이 단언했다. "

('사투' 중에서)


"흙으로 반든 인형, 임시로 불어넣은 생명.

"쓰치미카도 님?" 아카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흙으로 빚은 인형 같은 건가요? 그 괴물은 그렇게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까?"

"그렇소. 저주의 힘으로 만들어진 겁니다.""(묘넨과 아카네의 대화, '황신' 중에서) 


그렇다면 누가 왜 만든 것일까? 바로 고야마의 주술사 후손인 우류씨. 

전란시대 당하고 살던 고야마 사람들과 우류씨. 

우류씨의 분가 중 가이바라에 주술의 혈통이 흐르는데, 

가이바라 우류씨는 나가쓰노의 침공에 대항하는 괴수를 만들기로 하는데...

완성하지 못했다. 


"그 주술은, 이 땅과 우류씨가 맺은 단단한 결속, 지식으로서의 주문, 그 주문을 실현할 자질을 갖춘 혈통, 이 세 가지가 있어야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라고 한다."

('황신' 중에서)


결국 가이바라 우류씨 당주는 괴수를 만드는 데 실패해 할복하고, 쓰치미카도님은 오오타라야마 산에 매장되었다.

이후 가이바라 가문에 주술사의 능력을 타고난 아기가 태어나면 산은 번개를 쳐서 알렸다고.

그 아기는 절에 격리되었다.

아카네와 이치노스케 쌍둥이가 바로 그 아기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자라서 봄에 깨어난 쓰치미카도님을 없앨 수 있는 자들이다.


""에전에 쓰치미카도 님은 미처 완성되지 못한 저주의 덩어리로서 오오타라야마로 되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산속의 흙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던 거요. 그대로 오랫동안 잠을 잤던 거지."

내내 자면서 산에 의해 키워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쓰치미카도 님은 산의 정기를 야금야금 빨아들였고. 그것을 양식 삼아 몸집을 키워, 사람 손으로 완성하지 못한 모습으로 스스로 자라서 

마침내 올 봄에 태어나신 겁니다.""('황신' 중에서)


그러면 이 쓰치미카도 님이라는 괴수는 어찌 없앨 수 있을까?

쓰치미카도를 달래 주문을 간직해 온 묘넨.

그의 등에 적혀 있는 주문. 


""쓰치미카도님이 깨어난 이상, 가이바라 가의 주술사 자손이 그 목숨을 거둬줘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문은."

"염불처럼 외는 것이 아니라오. 주술사가 자기 몸에 적어서 쓰치미카도 님에게 잡아먹혀야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는 주문이지."

"쓰치미카도님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소. 주술사는 제 살점을 바쳐 쓰치미카도 님과 한 몸이 되고 그 마음이 되는 거요.

그래야 비로소 쓰치미카도 님을 진정시킬 수 있소.""('묘넨의 말, '황신' 중에서)


"괴물은 아카네를 삼키자 도마뱀처럼 생긴 몸통을 부들부들 떨었다.

발톱을 딱딱 울리고 앞다리를 번쩍 쳐들었다. 두 뒷다리가 땅을 쿵쿵 울렸다. 

그 대가리가 위를 향해 들렸다. 아가리를 벌리고 헐떡인다. 목을 울리는 소리가 한층 커진다. 마치 물에 빠지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다.

괴물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마 한복판에 하얀 점이 불쑥 나타난다.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서로 연결되어 선으로 변해간다. 점은 더 늘어나 면적을 널혀간다.

그 움직임은 조금 전 아카네의 피부 위에서 움직이던 것과 같았다. 저것도 주문인가? 주문이 괴물로 옮겨가 표면을 뒤덮고 있는 것일까?

다시 변신이 시작되었다. 

까만 광택이 나는 비늘들이 주문의 글자들 움직임에 밀려나듯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배로, 다리 끝으로 씻겨 내려가듯이 사라져 간다.

비늘이 사라지자 주문 자체도 사라졌고, 몸속이 비쳐 보일 듯이 맑은 피부가 드러났다. 

괴물은 두 앞다리로 대가리를 감쌌다. 몸뚱이 모양도 변해간다. 몸뚱이에 흡수되는 것처럼 꼬리가 사라졌다. 발톱도 사라졌다. 

툭툭 불어긴 다리 관절이 매끈해지고 두 뒷다리가 부드럽게 뻗어 나간다. 앞다리에서 발가락 다섯 개도 쑥쑥 늘어난다. 

그 발가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괴물이 몸을 웅크렸다.

주문은 소리도 없이 괴물의 온몸을 내달리고 사라졌다. 남은 것-.

사람이다.

괴물은 거의 사람 모습에 가까워졌다. 대가리가 뾰족하고 머리카락이 없고 귀도 없다. 그런 부분에만 아직 뱀의 모습이 남아 있다. 

매끄러운 몸이 새하얗게 빛난다.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았다. 사람에 가장 가깝다. 그렇게 변한 괴물이 두 손을 내리자 얼굴이 드러났다.

눈꺼풀이 벌어져 있었다.

한 쌍의 검은 눈동자. 눈동자가 문득 위로 움직이고 다시 밑으로 움직이다. 눈꺼풀을 깜빡인다.

희미한 따각 따각 소리, 발톱이다 .이제 갈고리 모양이 아니다. 긴 발톱도 사람의 그것처럼 변했다. 

미노키티는 아카네의 예쁜 손가락을 떠올렸다.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의 가슴이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숨을 쉬고 있다. 

두 다리로 서서 양팔을 몸 옆으로 떨어뜨렸고, 머리도 희미하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입술은 보이지 않지만 입매가 여자처럼 부드럽다."('황신' 중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흥미롭다. 인간여인의 마음을 갖게 되니 괴수는 사람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한다.

심지어 아름답다고 감탄할 모습이 된다.

어쨌거나 결국 괴물은 죽임을 당하고 재로 변하고 사라진다. 


3. 이야기는 두 가지 사건(괴수의 살상, 에마의 행방불명)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그러하듯 다양한 인물군상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야지와 이키치라는 인물이 흥미로운데, 원래의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다. 
여성이면서 여성임을 감추고 사는 야지, 막부의 간첩이면서 바보 흉내를 내면서 지내는 이키치.

이 소설은 거의 700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으로 한 편으로 끝이 난다. 
글쎄... 나중에 작가가 이 인물들을 다시 살려내는 이야기를 만들지는 모르겠다. 

이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소설 두 권을 남겨두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무리해보자. 내년의 즐거움은 그때 찾기로 하고.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