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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클럽], 성장의 아픔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7. 5. 1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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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꽂혀 있던 이 책은 무척 낡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손과 눈이 거쳐간 책이라는 뜻이겠지.


'프루스트 클럽'이라는 책 제목 때문에 읽어보기로 한 이 책은 읽고 보니 성장소설이었다.

'나'는 17살 청소년 윤오. 윤오가 우연히 만난 학교를 다니지 않는 18세 청소년 나원,

그리고 윤오가 전학한 학교에서 알게 된 효은, 이 세 명의 청소년은 프루스트 클럽의 멤버가 된다.

프루스트 클럽은 윤오와 나원이 만든 일종의 독서 모임이다.

그런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 권을 읽기로 한 모임이다. 


나원이가 말했다.

"나, 이런 책 한번 읽고 싶긴 했거든. 아주 길고 지겹고 어려운 책."


프루스트 클럽의 목표는 올해 안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는 것.

규칙은 하나. 중간에 뛰어넘거나 모르는 채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


프루스트 클럽의 모임은 그 주에 자기가 읽은 부분에서 모르는 것, 재미있었던 것, 흥미를 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처음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이야기했던 날, 나원이는 맨 앞에 나오는 몇 페이지를 직접 읽어 주었다.

나원이의 목소리, 밤과 어둠, 잠과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가 눈으로 책을 읽는 것과 누가 읽는 것을 듣는 건 달랐다. 

같은 이야기인데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새롭게 들렸다.


계획했던 것과 달리 학년이 바뀌기 전까지 다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지 못한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읽자고 했지만 나원이가 캐나다로 떠나게 되면서 그 계획은 중단된다.


갑자기 효은이가 일어나 책장을 뒤지더니 책을 두 권 꺼냈다.

"자, 이건 내 선물."

하얀 문고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첫째권. 프랑스 어 원서였다.

나원이는 책을 조심스럽게 들춰 보고 말했다.

"새 책과 함께 끝나는 구나. 끝나는 거랑 시작하는 건 언제나 맞물려 있다더니."

"다 읽으면 연락해."

"이걸? 아니면 번역본?"

"아무거나."

"지금부터 프랑스 어를 배워서 읽으려면 몇 년이나 걸릴까."

"배우기는 하려고?"

"그럼. 책도 받았는데 배워야지."

나는 짐짓 심각하게 말했다. 나원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 전에만 다 읽어. 이건."

효은이가 말했다.


효은이는 다시 물었다.

"왜 하필 그 책이었어?"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을 끌었다. 왜 그 책이었지. 창가에 선 효은이의 머리카락이 햇빛에 거의 주황색으로 보였다. 반짝였다.

"몰라."

그냥 그렇게만 대답했다. 어렵고 지루하고 긴 책. 하지만 왜 그래야 했을까? 효은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나중에야 대답을 발견했다. 그 책은 약속의 담보같은 것이었다고. 

무엇도 걸 수 없고 무엇도 믿을 수 없었기에 우리는 그 책을 읽기로 한 것이었다고. 

아주 어렵고 길고 읽기 힘든 것을 다 읽을 때까지 곁에 있자는 약속.

아주 어렵고 길고 힘든 때에 함게 있자는 약속.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


윤오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관계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카페주인인 오데뜨도 연말파티를 한 다음 갑자기 사라지고

고2가 되기 직전 나원이도 캐나다로 떠나고

고3이 되었을 때 효은이는 자살하고... 

윤오의 청소년기는 절망스럽게 끝이 나간다.


하지만 일본에서 고호 그림 전시회장에서 힘들었던 추억을 꺼집어내게 되고

그 추억에 직면하면서 힘들었던 경험들을 긍정할 힘을 얻는다. 

절망스러운 경험, 기억조차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읽기를 끝내지 못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계속 읽기로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읽던 중에 나의 청소년기가 떠올랐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독서모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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