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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산행의 끝은 컵라면

나들이예찬/나라안나들이

by 산삐아노 2015. 1. 3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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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비로봉을 뒤로 하고 상왕봉을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향한 길은

내가 오대산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길이다.

 

 

봄에 이곳을 걸었을 때는 주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막상 겨울날 다시 걷고 보니 주목보다는 은빛나는 나무들이 더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하얀 나무는 자작나무 가족인 사스래 나무가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보았다.

확인해 보려면 여름날 열매이삭이 매달릴 때 다시 한 번 더 와 보아야 할 것이다. 

 

 

나무들이 눈 위에서 마치 춤을 추는 듯 하다.

이런 풍경은 동화 속의 장면 같다.

 

 

 

밥을 굶고 걷다 보니 기운이 빠져서인지 다리가 무거워졌다.

길이 험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멋진 나무들이 설산에서 춤을 추는 신비로운 광경을 놓칠 수는 없는 법.

나이든 나무들이 많아 산이 더 아름답다.

 

 

 

세월을 느끼게 해 주는 나무를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울퉁불퉁 튀어나고 휘어지고 구멍이 뚫리고...

나이든 수피는 경외감 마저 느끼게 하는데, 우리 인간의 세월의 주름과 상처는 왜 그토록 감춰지는 것인지...

매번 같은 생각을 빠져든다.

 

 

 

산을 걸을 때 새나 곤충을 만나면 마음이 더 즐거워진다.

오대산에는 까마귀가 많다.

검은 털에서 빛이 나는 산뜻한 모습의 까마귀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산에서 까마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반갑다.

 

어느덧 상왕봉 정상에 이르지만 뭔가 정상 같지 않은 정상이다.

그래도 1491미터라고 하니 비롱봉 만큼은 아니지만 높긴 높은 곳이다.

 

바로 북대 삼거리를 향했다.

북대 삼거리에서 상원사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상왕봉을 지나서도 은빛 나무들이 계속 눈에 띤다.

햇살에 반사된 눈의 흰빛과 나무 껍질의 흰빛이 매력적인 겨울 풍경을 연출한다. 

 

 

사진에 담고 싶은 나무들을 많았지만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또 겨울 추위에 손이 시리기도 하고 해서

사진을 많이 찍을 수는 없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그때 그때 몇 장 찍어 보았을 뿐.

 

그런데 사진으로 되돌아보는 나무들은 직접 눈으로 본 나무들보다 덜 매혹적이다.

그래서 다시 산으로 달려가서 나무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북대 삼거리를 지나 조금 하산 하다 보면 상원사 주차장에서 북대로 이어지는 길이

매끄럽게 잘 닦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더는 산행의 기분을 느낄 수는 없다.

오고가는 차들이 많지는 않아도 차들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걷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4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진 속의 하산 길에는 벌써 저녁 어스름이 느껴질 정도로 빛이 사라졌다.

걷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

 

4시 20분 버스를 향해 눈길을 서둘러 걸었다.

 

 

 

시간을 잘 맞춰 내려와 평창운수의 버스를 눈 앞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멀리 소풍가의 불빛이 유혹한다.

굶주린 채 한 산행이라 더더욱.

 

버스를 타고 바로 내려갈까?

아니면 소풍가에서 라면을 먹으며 쉬다 갈까?

 

결국 버스를 포기하고 라면을 택한 채 소풍가의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컵라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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