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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 [크로스파이어], 염력방화능력을 이용한 처단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8. 12. 3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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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일본시대추리소설에서부터 출발해서 현대추리소설로 독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아직도 읽을 것들이 남아 있어 당분간 미야베 미유키 독서는 계속되겠지.


이번에 읽은 것은 [크로스파이어]로, 일본에서는 광문사에서 1998년에 나온 소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초능력을 소재로 삼았으며, 특히 주인공 준코는 염력방화능력을 가졌다. 따라서 또 다른 소재는 '불'이다.


"잘못을 바로잡고 옳지 못한 것을 모두 태워 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평온한 '무'를 가져다주는 절대적인 힘-그것이 '불'이다."


겨울이라는 배경 속에 등장하는 불의 이미지. 강렬하다.
게다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악인을 처단하고 세상을 정화시키는 힘으로 여겨지는 불. 준코가 불을 사용하는 논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금방 떠오르는 것이 마녀사냥이다. 화형대 위에서 불에 태워지는 마녀. 준코와 같은 논리를 사용한 종교.
하지만 사실 마녀가 아니면서도 마녀로 몰리고 희생된 수많은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불태워진 이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 화상의 고통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의를 표방했지만 가장 부정의했던 역사적 단면.
불, 정화, 고통... 여러 생각의 단편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무튼 겨울철에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저자는 정의를 표방한 개인적 처단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식의 처단이 이르는 귀결은 무엇일지 보여준다. 


"아오키 준코는 지금까지 나쁜 일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나쁜 사람들도 수없이 보아왔다. 

아사바 게이이치 같은 '악'은 어디에나 있다. 어쨌든 그런 '악'은 존재한다. 이른바 '쓰레기'다.

사회가 살아 숨 쉬는 한 근절할 수가 없다. 나타나면 퇴치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아사바의 어머니나 불법 제조 권총을 팔던 남자 같은 '곁다리 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흉악'에 편승한 '악'은 어떻게 할까. 

그들의 태만과 터무니없는 욕심이 사회에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는 거의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그들 자신은 '악'이 아니다. 한없이 '악'에 가깝지만 혼자서는 기능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다른 '악'에 편승하고 다른 '악'에서 파생하기 때문에."


준코는 스스로 질문한다. 

악한 자만이 아니라 악과 연계된 파생된 악까지 처단해야 하는지, 심지어 악 주변의 선한 자들까지 희생시켜야 하는지?

하지만 '가디언' 조직은 '그렇다'고 답한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은 따르기 마련이라는 자기합리화.

저자는 이런 식의 합리화에 대해 문제제기한다. 

뿐만 아니라, 단지 자기기분풀이가 될 우려는 없는지 묻는다.


"... 아주 잠깐이라도, 단 몇 분이라도 화가 나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일상이다.

우리는 그런 화를 참고 산다. 그게 일상이기 때문에 참는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그런 일상적인 일 하나하나에 화를 내고 신경 거슬리는 짓을 한 상대를 비난하거나 때린다면 사회에 적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귀중한 자기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그렇지만 참을 필요가 없다면?

당장 앙갚음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앙갚음을 한 사람이 자기라는 걸 아무도 모르게.

전철 안에서 하이힐로 자기 발을 밟은 여자, 밟은 것을 알면서도 사과는커녕 모른 체한다. 화가 난다. 

그 여자가 지금 전철에서 내린다. 엉덩이를 흔들며 잔뜩 멋을 부리고 걷는다. 

의식을 집중해서 그 요란한 파마머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뚫어지게.

여자의 머리카락이 불타오른다.

아, 속이 후련하다.

초능력자의 기분을 거스르는 인간은, 초능력자를 기분 나쁘게 하는 인간은 바로 응징을 당한다."


더불어 저자는 뛰어난 초능력을 가진 개인의 고통을 상상해본다. 극도의 고립, 고독감. 

준코도 고이치도 고독한 인물들이다. 가오리짱도. 


미야베 미유키의 [크로스파이어]의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느낌이 든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생각, 정의를 표방하는 처단의 한계에 대한 생각은 사실 특별할 것은 없다. 

당연히 그 누구도 정의로운 처단을 할 만큼 건전하고 균형잡힌 이성을 갖고 있지 않으니 언제든 실수를 할 수 있고 오히려 악한 행위에 동참할 수도 있다. 

따라서 건전한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어 덜 재밌다.  


어쨌거나 그녀가 초능력을 소재로 삼은 다른 소설을 좀더 읽어보고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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