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도 여행동안 꼭 한라산 정상에 오르진 못한다 할지라도 발자국만이라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제주에 도착한 날에도 머무는 동안에도 비는 오락가락했다.

비가 짬짬이 내리는 사이에도 햇살은 강렬하고 뜨거워 여름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바닷가를 걷기로 했다. 

무작정 북동쪽 해안으로 가보자 생각했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미리 정보를 취합해서 선택한 여정이 아니었으니 대충 지도를 보고 

조천읍 만세동산에서 내려서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올레길 18번을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함덕 해수욕장 대명 리조트 근처에서 자라는 야자수들)

하지만 버스기사의 불친절함 덕분에 조천읍 만세동산에서 내리지 못했다. 

조천읍 만세동산에서 내리려는데 알려달라는 부탁에 버스기사는 자신이 잊어버릴 수 있으니 정류장 안내를 듣고 내리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정류장 안내방송에는 조천읍 만세동산이 없었다. 

버스 기사는 우리에게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뒤늦게 지도를 확인해 조천읍 만세동산이 한참 지났음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하차했다. 

바로 우리가 하차한 그곳이 함덕 해수욕장 근처였던 것이다. 

관광지의 버스기사가 불친절하다는 것을 느낀 두 번째 경험이었다. 

경주의 버스기사들도 불친절했지만 제주도 못지 않았다.

제주의 이 버스기사는 관광객에게만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노인에게도 무척 불친절했고,

다리가 불편해서 버스 한 구역을 타고 이동한 할머니가 버스를 내린 후 욕을 해댔다. 

불친절한 버스기사 때문에 기분이 나빴지만, 

내리려던 정류소에서 내리지 못했지만, 

세상의 일은 꼭 나쁜 것만 없다고 하듯이 결과적으로는 함덕 해수욕장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모래해안은 대명리조트에서 가까운 해안이다. 

9월초라 해수욕장이 폐장한 상태.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해안가는 전체적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비가 내리는 오전, 햇살이 부족해서인지 바다 색깔이 전날 일출봉에 가서 본 바다와는 완연히 다르다.

우유빛이 더해져서 은은하 회청색빛을 띠는 바닷물이 편안함을 준다.

멀리 배가 보였다.

잠깐 비가 잦아든 틈에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적시고 해안을 걸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곧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바닷물이 서서히 안쪽으로 들어왔다. 

방송에서는 해수욕장이 폐장되었으니 바닷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방송이 계속 나온다. 

알고 보니, 바닷물 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방송에도 아랑곳없이 수영을 즐겼다. 

결국 영어방송이 나왔고, 이들도 물 밖으로 나왔다. 이들이 외국인이었던 것. 

바닷물이 모래해안을 동그랗게 감싸면서 들어오는 광격을 보다보니, 

프랑스 서북쪽 노르망디 해안 근처에 갔을 때 밀물인 줄 모르고 홍합을 캐는데 열중해서 우리 주위를 바닷물이 동그랗게 감싸 섬이 된 줄도 몰랐었다. 

결국 들어오는 바닷물을 겨우 가로질러 벗어났었던 공포스러운 기억, 바로 그 기억이 소환되었다.

바닷가의 현무암이 반가웠다. 

대학시절, 제주도에 왔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이 현무암이었기에. 

현무암의 변함없는 모습이 내가 다시 제주에 왔음을 확인케 했다. 

현무암 주변에는 작은 게를 비롯해서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무수한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지난 여름 해수욕장을 찾았을 어린이들은 이 튜브를 타고 놀았을 것이다. 

멀리 무민이 장대 끝에 선글라스를 쓰고 매달려 있었다. 

유럽의 형벌 생각이 나서 잠시 섬찟하기도 했고... 

비 맞고 있는 무민이 처량하기도 하다. 

다리 위를 올라가서 저 멀리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좀더 가볼까 싶었지만 가지 말라는 방송이 나온다.

함덕해수욕장을 벗어나 올레길을 걸어보자 싶어 걸어나오는데 여기지거 지난 여름의 흔적들이 보인다. 

오른편에 커다란 곰인형 둘이 구명조끼를 입고 비를 맞고 앉아 있다. 

불쌍한 모습.

이 투명한 보트들은 뭘까?

함덕 해수욕장의 물빛이 지중해의 바닷물처럼 에메랄드 색깔이다. 아름답다. 

현무암과 대비를 이루는 바다물색이 신비로움 마저 안겨준다.

제주 바다가 이렇게 멋지다니! 

좀 내려와서 걸으면서 우리가 잠시 머문 해안이 함덕해수욕장의 끝자락임을 알게 되었다. 

함덕 해수욕장이 더 넓은 백사장은 그곳 너머에 펼쳐졌다. 

모래밭과 바닷물, 현무암... 올여름 바닷가에 가보지 못한 보상으로 충분했다. 

그 불친절한 기사도 용서하자. 덕분에 함덕해수욕장에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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