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마루 가쿠의 추리소설 읽기 두번째 책으로 [허몽(2008)]을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산문화사 '북홀릭'에서 2010년에 번역출간했다. 

10년 전 소설이다. 


앞서 읽었던 책 [천사의 나이프(2005)]은 청소년에 의한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청소년 보호법으로 인해 겪는 피해자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소설은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인한 살인으로 고통받는 피해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론 저자는 나름의 균형감각을 발휘해서 살인자들의 고통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미카미는 조현병 환자의 살인으로 어린 딸을 잃고 이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아내와 이혼한 이혼남이다. 

살인사건 전에는 추리소설 작가였지만 이후는 알코올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프리라이터로 살아간다. 

그는 아내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한탄한다. 

그리고 일본형법 39조에 대해 분개한다. 

정신병으로 인한 살인이 심신실조, 심신모약으로 책임능력이 없는 자에 의해 발생했다면 불기소, 무죄, 감형으로 처리한다.

또 형법 39조는 술에 취한 상태나 각성제 등의 마약으로 환각과 망상에 사로잡혔을 때에도 적용된다고 한다. 

마약과 알코올의 힘을 빌어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감형을 받거나 무죄가 된다는 것에 미카미는 분노를 터트린다.

이 대목은 우리 형법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는 눈오는 날 공원에서 무자비하게 벌어지는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흰 눈과 살해당하거나 부상입은 사람들의 피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섬찟한 장면이다.

날씨가 무더워도 이런 장면은 소름을 돋게 한다. 


정신병 환자였던 젊은 후지사키가 망상 때문에 벌인 일이다.

하지만 어린 딸을 잃은 사와코는 후지사키를 용서할 수가 없다.

4년이 흐른 시점에 후지사키가 세상으로 나오고 재혼한 사와코는 후지사키가 자신을 노리고 있며 전남편 미카미에게 연락해 온다. 

미카미는 사와코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의 탓하며 사와코를 도와주려 애쓴다.


이야기의 또 다른 줄기는 유키라는 젊은 여성과 후지사키의 만남에 대한 것이다. 

유키 역시 '해리성도주'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여성이다. 

어린 시절의 고통이 그녀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두 남녀와 딸의 살인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고통받는 사와코와 미카미가 교차하는 지점,  

그 지점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맞은 편 집의 조현병 환자 청년에게 각목으로 머리를 맞아 병원에 입원치료했던 기억이 난다. 

그 청년은 병원치료를 받다가 나와서 집에서 머무는 중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친구가 집 초인종을 부르는 데 뒤에서 그 청년이 머리를 가격한 것이다.

두개골이 부러져 친구는 인공뼈를 붙여야했다. 

그때 어린 나는 조현병 환자는 두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서 조현병 환자를 가까이서 본 것은 두 번이다. 

사실 조현병 환자가 살인이나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은 소위 정상인이 그럴 가능성에 비해 낮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조현병 환자를 가두거나 소외시키는 등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인권적 차원의 주장이 있다.

나도 조현병 환자의 인권을 박탈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데 동감한다.

하지만 그들의 망상, 환각이 주위 사람들을 불편, 아니 두렵게 하는 점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소설의 피해자들처럼 자녀를 잃게 된다면, 아마 그들이 누구이건 용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더위로 기운을 잃는 요즘, 

눈오는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인사건을 다루는 [허몽]은 서늘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아무튼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허몽]은 

일본의 법 헛점, 그로 인해 살인사건 피해자가 겪는 이중의 고통, 살인자의 살인 전, 살인 후의 고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작가가 계속해서 이런 식의 추리소설을 써나갈지 궁금하니, 다른 책들도 차례로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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