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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2], 인간의 사악함 보여주기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8. 7. 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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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추리물로 분류되는 소설 [이유]를 읽고 [모방범]을 읽어보자 싶었다. 

[모방범]은 일본에서 2001년 소학관에서 상, 하 두 권으로 출간되었던 추리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동네에서 3권으로 출간되었다. 

아마도 분량이 방대해서 그렇게 나눈 것 같다. 

내가 읽은 [모방범2]만 해도 500페이지가 넘는다. 


대개 3권으로 출간되면 1권부터 순서대로 읽는 게 흔한 일이겠지만 나는 2권부터 읽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모방범]은 읽는 사람이 적지 않은지 도서관에서 빌리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1권은 예약해두고 2권부터 읽기로 한 것이다. 

읽어보니 2권부터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2권의 이야기에서는 

유미코의 오빠 다카이 가즈아키의 어릴 때 친구인 구리하시 히로미와 그의 친구인 피스(별명, 아미가와 고이치)가 벌이는 여성 연쇄살인행각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피스가 악을 실현하기 위해 주도하고 구리하시 히로미가 따르는 식의 여성연쇄살인은 소름끼치도록 섬찟하다. 

이유가 있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악을 실현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피스.

피스는 마치 연극을 무대에 펼치듯 살인한 여성들을 여배우로 부르며 살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극을 완성하기 위해 다카이 가즈아키가 살인범으로 만드는 데 몰두한다. 

유미코의 오빠 가즈아키는 히로미가 여성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짐작하지만 그를 자수하도록 설득하려 애쓴다.

원래 히로미는 착한 사람인데, 마음의 상처가 있어 그런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를 도와주기로 마음먹는다. 

피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히로미가 그의 도움을 받으려는 그 순간, 히로미와 가즈아키가 탄 차가 사고가 나고 둘은 죽는다. 

그들이 탄 차에서 시신이 발견되고 결국 경찰은 그들이 연쇄살인범이라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유미코는 자신의 오빠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한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한 르포를 쓰는 시게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하지만 시게코를 만나지 못하고 피스의 차에 실려가는 것으로 2권은 끝이 난다. 


지금으로서는 1권보다도 3권의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피스의 차를 타고 가는 유미코의 운명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야베 미유키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피스, 히로미란 살인범 캐릭터를 그려가는 그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인물들도 참으로 잘 흥미롭다. 


다음 구절이 인상적이라 길지만 메모해 둔다.

"인간이 일으키는 재난의 뿌리에는 오로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다케가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은 드물다.

구리하시와 다카이의 행위를 추적 조사하는 것은 인간의 사악함을 파헤치는 일이기도 하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캄캄한 광맥이 끝없이 뻗어 있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 

그러므로 그들의 야망이 자기 만족에서 사회적인 갈채를 요구하는 단계로 팽창되어갔다고 상상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욕망조차 가장 파괴적인 루트를 따라 표현한 그들이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환상이라는 왕국 속에서는 작은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은 왕이다.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 자체는 결코 사악하지도 않고 죄도 아니다. 

오히려 알력으로 가득한 현실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왕에게도 전제군주에 대한 동경은 있다.

그것 또한 누구든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지향이다.

그 또는 그녀는 곧 바깥세계로 눈길을 돌린다. 

영토를 넓히고 자신이 세운 성 안으로 들어오는 시민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연습'을 거듭하여 자신의 역량이 확인되면 기꺼이 길을 떠난다.


그러나 그 앞길은 천차만별이다. 

그들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무엇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을지, 어느 정도 규모의 왕국을 만들어낼지, 거기서 선정을 펼칠지 독재자가 될지, 

결국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하고 다케가미는 생각했다. 

어떤 여자는 순종적이고 상냥한 마음을 가진 아내로서 한 남자의 왕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어떤 남자는 추앙받는 기업인으로서 몇 백명 사원의 왕이 되어 만족할지도 모른다.

어떤 여자는 배우가 되어 어떤 시대의 여자들에게 꿈을 주고 남자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자신의 왕국을 건설할지도 모른다.

어떤 남자는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가 되어 비록 좁더라도 자기 분야에서 중요한 실적을 쌓아 그곳을 자신의 왕국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다케가미도 데스크 담당자로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그의 작은 왕국을 세워가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아내는 그의 시민이다. 

동시에 그는 아내의 시민이기도 하다.

물론 서로의 압제를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민을 갈지도 모를 위험에 빠지겠지만, 그러기 전가지는 서로에게 시민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함께 개척하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서로의 시민이 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이 나약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라고 다케가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 대화를 나누거나 전쟁을 벌이거나 의기투합하는 등의 절차를 거부하고 억지로 시민을 늘리려는 왕이 나타난다. 

그런 왕은 실제로 법에 저촉되는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파괴적인 인간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파괴적인 인간은 결코 누군가의 시민이 될 수 없다. 

다만 왕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고독하다.

고독하기에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영원한 시민을 얻고 싶어한다. 

그래서 어떤 자는 물리적으로 또 어떤 자는 정신적으로 타자를 죽인다.

그 물리적인 예의 극단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연속살인범이며, 구리하시와 다카이도 그런 고독한 왕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의 산과 피의 강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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