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미야베 미유키의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3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8. 6. 4. 17:48

본문

1. 날씨가 더워지고 기운이 좀 빠진다 싶은, 아니 휴가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 다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기웃거리게 된다. 

에도시대 소설이 혹시 더 번역되어 나온 것이 있나, 살펴보니 있긴 하다. [삼귀]

하지만 번역된 지 얼마되지 않으니 도서관에서 내 차례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경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거의 찾지 않을 것 같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읽기로 했다. 

그래서 읽기로 한 것이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2013)].

우리나라에서 번역출간된 해는 2015년. 번역자가 번역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좀 늦는다. 


원래는 [이름 없는독(2006)]을 읽을 차례인데, 건너 뛰었다. 

마침 이 책을 대출해 갔는지 도서관에 이 책이 없었기 때문에, 당장 읽고 싶으니,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부터 읽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은 863페이지로 그 양이 방대하다. 

양에서 조금 질리게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필력을 믿고 읽기로 했다. 

아마 이 책을 손에서 놓게 되지는 않으리라 믿으며. 


2. 재벌의 딸과 결혼해서 재벌가 회사에 평사원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스기무라 사부로.

일을 하다가 버스납치사건에 휘말린다. 다행히 인질들은 무사했지만 버스납치를 한 범인은 자살한다.

버스납치 당시 인질이었던 사람들, 

스기무라 사부로를 포함해서 소노다 에이코 편집장, 시바노 버스기사, 사코타 부인, 중년의 다나카씨,  사카모토군과 마에노양에게 

범인이 택배로 위로금을 보내온다. 

이 위로금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조사를 시작하는데...

그러다가 버스납치사건의 범인이 다단계사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면서, 다단계사기의 우두머리뿐만 아니라 중간 피해자겸 가해자들도 응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래서 벌인 사건이 버스납치사건.


책의 부피가 두꺼운 만큼, 버스납치사건, 위로금을 보낸 사람 찾기, 다단계와 관련된 사람의 살인사건, 버스납치범의 정체, 제2의 버스납치사건 등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진다. 

이 사건 이외에 이데씨의 마노씨에 대한 성추행, 모리씨의 동반자살, 나호코의 외도, 스기무라 사부로의 이혼 등, 

스기무라 사부로의 회사 내 문제, 가정의 문제도 함께 얽힌다. 


미야베 미유키의 '행복한 탐정은 없다'란 생각이 이번 작품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3. 나는 이 소설이 무척 흥미로왔는데, 다단계에 대한 분석 때문이었다. 

다단계 사기를 하는 자와 자기계발강사, 직원 교육 트레이너가 한 줄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그리고 그것은 사이비 종교 교주와도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그렇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바로 종교에 대한 맹신에서 사주팔자에 빠지더니, 자기계발로, 다단계로, 사이비종교로 빠져들었다.   

그는 말솜씨가 능란해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능하다. 

그 주변 사람들은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세계로 포섭된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닐세. 사물을 보는 눈이야."

"놈들이 목표로 하는 건 교육이 아니야. '개조'일세. 사람은 개조할 수 없어. 개조할 수 있는 건 '물건'일세."  ('7' 중에서)


스기무라 사부로는 글 속에서 자기계발 세미나 역시 인간을 '개조'하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다단계 마케팅이나 가공 투자사기 등의 악질 상행위는 법규제의 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여러모로 진화 변화해 왔지만 핵심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요컨대 피라미드 식이다. 손님을 계속 늘리지 못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파탄이 난다. 

따라서 새로운 손님을 유치하는 것이 조직의 절대적인 사명이다. 손님이 손님을 데려오게 한다. 

한편으로 이미 붙잡은 고객들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해서, 이 점에서도 지속적인 교육, 아니 설득이 필요해진다. 

거의 세뇌와 종이 한 장 차이인 깊은 설득, 그리고 웃는 얼굴 밑에 폭력성을 감추고 있는 설득이."('7' 중에서) 

  

그렇다. 세뇌다. 폭력성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투자 사기 이야기라면, 규모에 차이는 있어도 요즘은 드물지 않다. 

실체가 없는 것을 강매하는 페이퍼 거래도 끊이지 않는다. 

정체는 또같은데 겉모양만 교활하게 바꾸어 꾸미는 이상한 마녀에게 몇 번을 호되게 당해도 사모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처럼,

우리 사회는 악질 상행위의 존재를 허용하고 만다. ('7' 중에서) 

 

정말로 일본 사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악질 상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상대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여서 억지로 끌고 간다고 할까. 삼켜 버린다오."('9' 중에서)


상대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개조하고 세뇌하는 폭력적 행위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자들,

이들은 상대를 억지로 끌고 가며 '삼켜버린다'.

'삼켜버린다'는 표현이 맞다 싶다.


4. 나는 이 소설의 원제인 "베드로의 장례"라는 제목이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다음 구절에서 풀린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은 자신도 그 목숨으로 보상해야 한다. 그래서 구레키 노인은 솔선해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많은 사람의 죽음이, 명예의 죽음이, 영혼의 죽음이 이어질 것이다. 구레키 가즈미쓰는 그 장례 행렬의 선두를 걷는 것이다."('10' 중에서)


거짓말로 세뇌로 개조로 사람들을 삼켜버렸던 버스납치범인은 베드로처럼 속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그리고 속죄를 위해 제 2의 버스납치범, 제 3의 버스납치범이 자신의 목숨을 받치는 행렬이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5.  기억에 남는 구절들


"살인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극상의 권력 행사"(회장님의 생각, '프롤로그' 중에서)


"남의 소문은 75일"('3' 중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인연이다. 

살아 있고 피가 통하는 인연이 어떤 이유로 약해지고 가늘어지고 결국 죽어 버리면, 

그 인연에 더 이상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13' 중에서)


"타인에게 조언을 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에필로그' 중에서)


6. 정말 대단한 책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인물, 세상을 분석하는 기술이 정말 탁월하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내 눈을 더 밝게 해주었다. 

다단계에 혹하는 사람들, 다단계의 중간자들(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 이 책을 좀 읽어주었으면 싶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