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을 극장에서 볼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볼 수 있어 운이 좋다.

얼마 전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를 인터넷에서 보고 기회가 된다면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왔다. 

이제 우리에게 고전SF영화가 된 [블레이드 러너], 하지만 이 영화를 2018년에 보아도 지루하거나 식상하지 않다는 것이 놀랍다. 

1982년에 처음 편집되서 미국에 개봉된 [블레이드 러너]는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걸치는 SF영화 '혹성탈출 시리즈'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걸치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이어 등장하는 SF영화인데, 당시 흥행에 참패했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는 그 어떤 작품보다 흥미로운데,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82년도판 [블레이드 러너]가 실패한 이유는 제작자의 압력으로 감독이 원하는 편집을 할 수 없었던 때문으로 평가한다.

92년도  감독판 편집본 [블레이드 러너]가 영화관에서 개봉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07년에 감독이 최종적으로 편집한 본이 선보인다. 

이번에 내가 본 것이 바로 2007년도 파이널 컷이다. 

1. 영화가 개봉된 1982년에 원작자인 필립 K. 딕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데, 

[블레이드 러너]는 버로스의 동명소설과는 내용이 다르고 영화가 각색한 소설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이다.

이 소설 속의 릭 데커드는 돈벌이를 위해 복제인간을 뒤쫓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복제동물이 아닌 양을 구입하는 자로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감정과 기억은 인간의 전유물이고 복제인간은 감정과 기억이 없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고.

그런데 각본가 햄턴 팬셔의 사색, 또 다른 각본가인 데이비드 피플스의 아이디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성찰이 더해지면서 원작 소설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는 로봇, 복제인간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눈 따로 몸 따로 두뇌 따로 만들어 이어붙이는 로봇 같기도 하고 

하지만 기억과 감정을 갖는다는 점에서 인간 같기도 하고...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시나리오를 보면 리플리컨트는 더는 로봇이 아니고 훨씬 복제인간에 근접해 있으며 결국 복제인간을 넘어서 새로운 인류로 진화한 존재로 그려진다.


2.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에서 흥미로운 점은 릭 데커드란  존재에 대한 것이다. 

단 한 번도 안구검사를 통한 복제인간 판별을 자신에게 적용해보지 못한 릭 데커드가 인간인가, 리플리컨트인가 하는 점이다.

영화는 유니콘 암시를 통해 그가 리플리컨트일 수 있음을 암시하고 끝이 난다. 

이 암시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와서 레이첼과 릭 데커드 사이의 리플리컨트 아이의 탄생 이야기로  이어진다.


3. 릭 데커드 역은 해리슨 포드가 맡았는데, 그러고 보면 해리슨 포드는 [스타워즈]에도 등장한다. 

당시 인기 있는 해리슨 포드를 영입한 것은 상업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 당시 해리슨 포드는 30대 후반이었지만 레이첼 역의 숀영은 20대 초반으로 둘 사이의 나이 차이가 무려 17살이다.

또 다른 커플인 로이 역의 룻거 하우어도 45년생, 프리스 역의 대릴 한나 60년생으로 나이 차이가 15살이다.

커플의 여성은 아주 어린 나이의 배우로 남성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캐스팅을 했다는 것이 남녀배우에 대한 보수적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자는 젊어야 하고 남자는 중후해야 하고... 하는 식의...

무엇보다 어이없었던 것은 바로 릭 데커드가 레이첼에게 구애하는 대목이었는데, 

데커드는 벽으로 레이첼을 터밀면서 폭력적이고 거칠게 대하는 장면이 구애가 아니라 성추행 장면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80년대 초반 미국인들의 성의식에 대한 수준을 볼 수 있다.


4. 그건 그렇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이에게 쫓기는 데커드의 장면은 마치 스릴러물에서 볼 법한 광경이었는데, 

일반적인 스릴러물과 달리 로이는 데커드를 죽이지 않고 그를 구해주면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로이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서 [블레이드 러너]는 우리에게 죽음을, 삶을,  기억을 생각해보도록 떠민다. 

비록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살아 있는 존재로서 리플리컨트는 감정과 기억을 가지고 있고 삶을 좀더 영속시키고 싶어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인간이 만든 리플리컨트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창조주가 만든 인간과 유사한 것일까?

리플리컨트에게도 인권과 같은 권리가 허용될 수 있을까? 등등

이런 식의 질문들이 영화를 관통해 떠오른다.

5. 영화의 배경이 2018년인데, 80년대 초에 2018년은 제법 먼 미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2018년은 이미 과거다. 2019년을 살면서 2018년을 미래로 그린 영화를 보니까 80년대의 미래상에 대해서 주목하게 된다.

2018년 로스앤젤레스에는 차가 공중을 날아다니지만 오늘날의 차는 여전히 땅에 바퀴를 굴리며 달리고 있다.

하지만 영상을 볼 수 있는 공중전화박스를 보니까, 80년대 인간은 스마트폰을 상상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더는 공중전화박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영상통화가 가능한 전화를 휴대하고 다니니까.

그리고 현재 로스앤젤레스도 영화 속처럼 우울하지는 않다. 

리플리컨트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이제 겨우 청소기 로봇이나 전시회 안내를 위한 로봇이 등장한 정도이니까.

복제인간은 도덕적 문제에 부닥쳐 있고 장기 이식을 위한 부분적 신체를 복제해 만들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6. [블레이드 러너]는 신비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일본 샤미센 연주나 아랍식 음악을 선택했다는 점이 서양인의 낯섬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우울한 LA의 거리에는 각국의 동양인들로 북적이는 것으로 표현했다. 노점상을 하는 일본인, 중국인들... 그리고 이집트인...

현재는 얼마나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서양인의 생각 속에는 동양이 낯설어서 신비롭다. 게다가 동양인에 대해서는 더럽고 소란스러운 등의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다.  

영화에서 동양적 시각의 한계가 엿보인다.


7.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도, [혹성탈출] 시리즈도 좋아하지만, 단연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잇는 편이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면, 레이첼과 데커드의 아이가 이끄는 리플리컨트 혁명군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진화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될까?

유인원이 인간의 진화를 이어가듯, 리플리컨트가 인간에 있어 진화의 상위를 차지한다는 식의 이야기일까?

그냥 한 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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