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집 상/하], 진실과 거짓사이

즐거운책벌레/소설

by 산삐아노 2017. 11. 4. 16:43

본문

1. 이번에는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소설로 분류되는 작품 가운데 [외딴집]을 읽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2005년에 출판되었는데, 내가 읽은 번역서는 2007년 북스피어에서 나왔다. 

상, 하권으로 된 이 책은 합쳐서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역시 이 작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지금껏 읽었던 시대 미스터리물('벚꽃 다시 벚꽃' '진상' '미인' '메롱') 가운데 내게는 가장 흥미로왔던 소설이었다. 

물론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차례로 죽음을 맞고, 

그 죽음이 공감이 되기보다는 인생의 덧없음을 들여다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다른 책에 비해서 사랑받기 어려운 점도 있을 법도 하다. 


2.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열살 여자아이 '호'다. 

이 아이에게 주어진 '호'라는 이름은 '바보'라는 뜻이니, 사실 이름이라고 하기도 적당하지 않을 듯하다.

아이의 존재를 무시하며 바보라고 놀리는 말 이상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

존재의 무가치함을 드러내는 이름이랄까.

이런 '호'의 이름은 '가가'님을 만나 뜻이 바뀐다. '방향'이라는 의미의 한자로, 마지막으로 '보물'이라는 의미로 '호'라는 이름은 의미변화를 거듭한다. 

다시 말해서 소설이 진행되면서 호는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찾아나감과 동시에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3. 호는 에도에서 태어난 아이지만 불행한 탄생과 더불어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어찌어찌 굴러서 어촌마을까지 흘러온 것이다.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마루미'라는 가상 공간 속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책 제목의 '외딴집'은 바로 '마른폭포저택'이다.

호는 이 동네에 버림받았을 때 이노우에가 사람들이 거두어준다. 

그리고 마른폭포 저택의 하녀가 되고 다시 이노우에가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4. 처음 사건은 이노우에가의 상냥한 아가씨 고토에의 독살사건이다. 

결혼을 앞둔 고토에의 결혼상대자를 사모했던 미에라는 여성의 질투심으로 고토에는 미에에 의해서 독살된 것이다. 

하지만 곧 고토에는 심장병으로 죽은 것으로 사실은 은폐되고 이 거짓은 시작일 뿐이다.  

마루미 번에 '가가'님이 유배되어 오면서 이제 마루미는 거짓의 세상이 되고 진실은 숨겨진다. 

'가가님'으로 불리는 존재자체도 거짓으로 둘러싸인 존재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사건의 살인자가 되고 유배되며 귀신으로 원령으로 불리고 결국 죽임을 당한다. 

고토에의 아비도, 고토에의 남형제도 모두 진실을 은폐하고, 

진실에을 궁금해했던 히키테 견습인 우사도, 마을관청 관리인 와타베도, 시체감식을 해오던 이자키도 모두 이런 저런 이유로 죽는다. 

마루미 번의 영주를, 마루미 번의 안녕을 지킨다는 이유로, 진실은 묻히고 거짓이 진실이 된다.

이야기는 끝으로 다가가면서 마루미번은 화재, 천둥과 벼락, 살생으로 지옥처럼 바뀐다.

한차례의 지옥이 지나가고 마루미 번은 다시 안녕을 되찾지만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고 간 뒤였다. 

이 과정에서도 풀처럼 질긴 호는 목숨을 잃지 않는다.


5.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어촌 마을 마루미 번의 날씨도 이 이야기에는 무척 중요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바다토끼'다.


"호, 저걸 보렴. 바람은 이렇게 조용한데, 바다에는 작고 하얀 파도가 많이 치고 있지? 

저럴 때 이곳 사람들은 '토끼가 날고 있다'고 한단다. 

토끼가 날면, 지금은 날씨가 아무리 맑아도 반나절도 못 되어 큰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거야.

그런 이유로 바다에서 토끼를 보면 어부들은  일찌감치 배를 돌리고

천염색을 하는 사람들은 나무통에 뚜껑을 덮어 버린단다.

멀리서 보면 작고 하얗고 예쁜 토끼지만, 그건 하늘과 바다가 거칠어질 징조거든."

(고토에가 호에게 들려주는 말, '바다토끼' 중에서)


귀를 기울여 보니, 틀림없이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에 섞여 작은 돌을 던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바다토끼가 데려오는 비에는 이렇게 우박이나 싸락눈이 섞일 때가 있는데, 이것이 가축의 눈을 종종 상하게 한다. 

사람도,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머리나 귀에 생각지도 못한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바다토끼' 중에서)


천둥과 벼락, 우박이 내려서 농사가 쉽지 않은 땅, 곤비라 신사 참배객에 의지하고, 조개염색으로 조금씩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곳,

그곳은 기후상으로도 살기가 쉽지는 않은 곳이다. 

기후적인 배경 자체도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쉽다.


6. 저자는 기후와 인간의 삶, 에도 막부와 번의 권력관계, 거짓과 진실, 미신과 과학, 상류층과 민초, 여성과 남성, 합리적 지성과 정서...

삶의 여러 면모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그런 다양한 측면이 뒤엉켜서 한시도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쉬게 된다고나 할까.


7.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가가님과 호. 신분도 나이도, 지적 능력도, 성별도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진실되게 소통해가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소설을 읽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두 인물은 너무나 강렬하다. 

이 소설의 힘이 두 인물의 힘이기도 한 것 같다. 


8.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세계로, 그것도 시대소설의 세계로 더 깊이 뛰어들 준비를 한다. 

도서관에서 어린시절 만화책을 빌리듯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소설들을 잔뜩 빌려서 책상 앞에 올려두었다. 

이제 차례로 계속 읽기만 하면 된다. 

다음에는 '하루살이'다. '벚꽃, 다시 벚꽃'의 전편이라고 이야기되는 책이다. 

어디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솜씨에 빠져들어 볼까?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